30대 사장의 옹골찬 꿈이 자라는 서머빌 Young’s Beauty

30 사장의 옹골찬 꿈이 자라는

서머빌 Young’s Beauty

영스 뷰티가 위치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서머빌(Summerville)은 인구 5만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백인이 72% 이상,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비율이 채 20%가 되지 않는 곳. 그런데 업계 경쟁은 치열하다. 영스 뷰티가 문을 연 이래이 지역에서 영업해온 뷰티서플라이는 총 4곳. 그중에서 현재 2곳이 살아남았고, 경쟁 가게는 서머빌에서 터줏대감처럼 오래 장사해온 대규모 체인 소매점이라고 한다.

생존의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달려 , 한갓진 시골 풍경들을 뒤로하고 다소 스산한 분위기의 몰에 자리한Young’s Beauty 보인다. 이름과 달리 Young 하지 않은 모습, 들었던 것보다 작은 규모에 당황하긴 했지만 일단 안으로 발을 디뎠다

Young’s Beauty 내부. 11,000스퀘어피트의 공간이 내벽을 사이에 두고 기존 가게(오른쪽)와 새로 꾸민 가게(왼쪽)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가게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Hello, how are you!” 크고 밝은 인사말과 함께 가득한 활기를 느낄 수 있었고, 사람 좋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김동욱 사장과 직원 4명이 일하는 가게 안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공간이 넓었다. 일렬로 이어진 조명아래,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게가 나란히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원래 찰스턴에서 작게 영업하던 영스 뷰티가 서머빌로 옮겨 문을 연 건 15년 전. 그리고 8년 전 대기업 엔지니어로 일하던 김동욱 사장이 20대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가게를 인수하면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6년 만에 6,000스퀘어피트 가게를 11,000스퀘어피트로 넓혔는데, 주 출입문이 있는 쪽은 부친에게 인수한 원래의 가게이고 이곳을 거쳐 들어가게 되어있는 안쪽은 옆 가게를 인수하여 새로 꾸민 곳이라고 한다. 초반에는 내측 벽을 확 트고자 했지만 건물 안전성을 고려하여 본의 아니게 한 가게 안에서 ‘온고지신’을 실천하게 된 셈.

계산대가 있는 기존 가게 쪽은 주로 고급 트랙 헤어와 잡화를, 안쪽 가게에서는 가발과 옷, 크로쉐, 케미컬 등을 취급하는 것으로아이템을 분리해 놓았다. 기존 가게는 부친이 했던 디스플레이를 살려 상호나 현수막 등의 벽 장식들을 그대로 두고 헤어와 잡화들을 빽빽하게 배치했지만, 새로 꾸민 안쪽 가게에는 김동욱 사장 나름의 디스플레이 전략이 나타난다.

1. 가발 진열

벽을 ㄷ자로 둘러싸고 수많은 가발이 진열되어 있는데,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고 한다. 가발은 섹션 별로 주황, 초록, 분홍 등 각기 다른 색의 종이가 부착되어 있어 한 눈에 가격대를 구분하도록 되어있다. 또한 김동욱 사장이 가장 공들이고 돈 들인 곳은 고급 가발 섹션이다. “휴먼 헤어 중에서 제일 비싼 가발들만 모아서 좀 더 차별적으로 디스플레이 해놓은 거예요. 마네킹부터 다르죠. 다른 건 회사에서 협찬도 받고 하지만 여긴 제가 하나하나 돈 주고 사 갖고 온 거고, 칸칸이 분리해서 더 특별해 보이도록 진열을 했어요.”

2. 다채로운 색깔의 브레이드와 염색약

가발의 반대쪽 면에는 갖가지 색깔의 브레이드 헤어 제품이 가득히 걸려있다. ‘과연 저게 팔릴까?’ 싶은 과감한 색들도 있다. “여름에는 가발 쓰기가 더우니까 브레이드를 많이 갖다 놓는데, 색깔을 최대한 다채롭게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해요. 형광이나 투톤,솔리드, 3가지가 어우러진 컬러도 있죠. 사실 잘 안 나가는 거 알면서도 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컬러도 가지고 있다’손님들에게 보여주기 도 있어야 하니까. 한 명이라도 와서 사가지고 가면 성공인 거죠. 염색약도 마찬가지예요. 브라이트 컬러들이유행하는 트렌드에 따라 헤어 컬러 섹션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3. 트렌드에 따라 새로운 아이템 갖추기

 팬데믹 기간에 옷 섹션을 설치했다. 남자 옷을 시작으로 작년에는 여자 옷을 추가했는데, 코로나로 백화점들이 문을 닫아 쇼핑이어려운 상황에서 톡톡한 매출 효자 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아이템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

 

4. 언제든 손님이 필요로 하는 곳에

두 가게가 벽으로 나뉘어 있다 보니 고객 응대가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진열대나 출입구 사이 곳곳에 “고객이 부르는 즉시 오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호출 버튼을 설치해 놓았다. 고객 서비스를 중시한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소소한 팁이 과연 생존’전략이 될 수 있을까? 한동안 가게 안 상황을 유심히 지켜본 결과 한 가지 눈에 띄는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게 문을 나서는 손님 누구나 환한 웃음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5. 최고의 전략은 “무조건 친절”

“저희 손님들 중에 인상 쓰고 나간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어요.” 김동욱 사장은 자신 있게 말한다.
“진상 고객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웃게 해서 보내요. 가발 쓰던 거 들고 와서 리턴한다 그러면 다음에 오든 안 오든 그냥 제가 손해 보고받아요. 저희는 철저히 고객 서비스에 승부를 둬요. 상대 가게와는 가격 경쟁력에서 이길 수가 없거든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만 네댓 개의 대형 가게를 운영하는 곳이라 원가 이하로 세일하는 것도 많고, 거긴 캐시로 리펀도 해줘요. 저희는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까 교환이라도 자유롭도록 노력하고 어느 경우든 손님에게 친절하려고 애쓰죠.”
그의 말을 증명하듯이, 구글 리뷰에도 유독 고객 서비스에 대한 칭찬 글들이 많다.

 

6. 손님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면 “어떻게 지냈어요?”라는 안부부터 “머리 잘 됐네요.” “오늘 화장 좋은데요?”, “머리 색 예뻐요!”… 테너를 연상시키는 중저음 목소리로 쉴 새 없이 고객들과 대화하는 김동욱 사장의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금이야 매니저가 있어서 캐시 레지스터를 덜 보지만 그전까지 6~7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직접 캐셔를 본 덕에 손님들 사정을 훤히 알 정도란다.
“예전에 암에 걸린 백인 손님이 계셨어요. 오시면 항상 비싼 가발을 사 갖고 가셨는데, 몇 년 동안 안 오시더라고요. 걱정돼서 전화도 했는데 안 받으시고… 돌아가셨나 보다 했는데 5년 만에 오셔서 완치됐다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가발 산다고 하셨던 일이기억에 남아요.”
이렇게 대면 소통만 아니라 젊은 사장답게 온라인 홍보도 열심이다.

Young’s Beauty의 페이스북 포스팅


직원들과 함께. (왼쪽부터)  Cedrick, Victoria(매니저), 김동욱 사장, Joyce, Smiley

7. 직원은 사장을 닮는다

영스 뷰티에는 현재 흑인 직원 4명이 함께 일한다. 이전엔 한국인 매니저가 있었지만 시골이라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 흑인 직원만으로 가게를 꾸리게 됐는데 의외로 장점도 많고 잘 맞다고 한다. 부모님 시절부터 함께해온 Joyce씨는 김동욱 사장에게 “나는 너의 black mother”이라고 농담하곤 한다. 매니저이자 스타일리스트인 Victoria는 주 5일은 가게에서, 이틀은 자기 숍에 가서 일할 정도로 일 자체를 즐긴다. 직원들의 공통점은 활기차고 친절한 고객 응대. 사장이 손님을 대하는 자세를 봐왔기 때문이다.

 

8. 매장 관리는 매뉴얼 대로

영스 뷰티 직원들에게는 독특한 리포트가 있다. 브레이딩 헤어 채워놓기, 메이크업 정리하기 등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을 적어놓고 처리할 때마다 옆에 마크하도록 되어 있는 체크 리스트인데, 이런 매뉴얼을 구축하는 데 거의 1년이 걸렸다고 한다. 고생한덕분에 지금은 처음 출근하는 직원이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 수고를 덜었다. 매니저도 일일이 지시할 필요 없고 직원들도그때그때 할 일을 확인하며 손님들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덕분에 김동욱 사장도 휴일 없이 일하던 삶에서 벗어나게 됐단다.

8년 차 김동욱 사장, 짧고 굵은 뷰티서플라이 인생이지만 분명한 경영 철학과 노련함이 묻어난다. 창창한 나이에 아버지의 사업을 인수, 불과 몇 년 새 지역에서 규모와 내실을 갖춘 뷰티 스토어로 키워낸 30대 젊은 사장의 야심 찬 목표는 무엇일까.

 

 “50전에 은퇴하는 겁니다”

당찬 목표를 기대한 질문에서 “빠른 은퇴”란 답을 듣고 ‘아, 말로만 듣던 ‘파이어 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이구나. 요즘 젊은 세대의 가치관은 이런 건가?’ 색안경을 끼고 봤던 생각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응원으로 바뀌었다.

 

회사원에서 사업가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앨라배마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3년을 일했어요. 부모님이 제 고교 시절부터 뷰티서플라이 소매점을 하고 계셨는데 은퇴하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게 됐죠.”
그때 나이가 불과 스물여덟. 창창한 진로를 접는 데 고민은 없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게 사업이라 크게 고민하진않았어요. 회사 생활도 재미는 있었지만 20년, 30년 버텨서 임원을 달 수 있을까 하는 확신이 없었고, 그 정도 못할 거면 차라리 빨리 내 돈 버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당시 어머니가 편찮으셨어요. 아버지 혼자 일하시니까 사실상 선택지가 없기도 했고요.”

 

“계약서 쓰고 꼬박꼬박 갚고 있습니다”

김동욱 사장은 가게 인수 시 부모님과 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그것도 회계사 사무실에 가서 정석대로.
“가게가 부모님에겐 은퇴 자금이었으니까요. 저랑 누나 공부시키느라 돈을 많이 못 모으셨어요. 그래서 인수금을 매달 갚아나가는 걸로 계약서를 썼죠. 원래 5년 상환 계획이었는데 가게를 넓히면서 조금 늦어졌어요. 지금은 거의 다 갚았어요.”
계산 철저한(?) 아들 덕분에 부모님은 은퇴하시고 두 분의 삶을 즐기고 계신다고 한다.

8년간의 치열한 사업 일지

장사 초반, 회사 생활하는 친구들과 달리 휴일 없이 일하고 친구 결혼식조차 참석하지 못해 원망을 들을 때면 회의가 들곤 했지만 부모님의 삶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부모님이 그렇게 20년을 해 오셨잖아요. 저는 고작 몇 년 밖에 안됐고 영어도능숙한데 부모님보다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께 인수받고 1년 만에 옆 가게가 비면서 가게를 확장했다. 사업이 커져갈 때의 성취감은 짜릿했고 보람과 목표도 생겼다. 주말도 쉬지 않고 하루 10시간을 일하며 그 와중에 결혼까지(!) 했다.

아내 성민기씨와 김동욱 사장의 결혼사진

“아내와는 주얼리 사업하는 친한 형이 소개해 줘서 만났어요. 당시 아내가 애틀랜타에 살았는데 매주 일 끝나면 갔다가 하루 이틀 보고 내려와서 바로 일하고.. 그렇게 반 년을 하니까 몸이 난리가 났죠. 아내가 ‘안 되겠다, 내가 그냥 결혼해 줄게’ 그렇게 해서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했습니다.”

창창한 30대,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

“처음 6년 동안은 직원 일 처리를 믿질 못해서 가게에 오는 박스랑 물건들을 제가 다 정리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몸이 성한데가 없어요. 아직 젊은데 발목부터 손목 다 아파요. 건강검진 결과도 좋지 않고, 상담도 받아봤는데 일 중독이래요. 이러면 삶에재미가 없어진다고 무조건 일을 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8년을 매일 일만 하다가… 생각이 많이 변하고 있어요.”
그는 무엇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전한다.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 다녀왔어요. 아내도 처음 2년간 가게에 나와서 시스템 갖추느라 같이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일하고 최대한 빨리 은퇴해서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큰돈 못 벌어도, 50 전에은퇴하는 게 목표예요. 제 나이에 이런 얘기 하긴 그렇지만… 그래서 두 배로 뛰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목표다. 아버지 세대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MZ 세대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김동욱 사장의 옹골찬 꿈이 부디 계획대로 실현되길 바란다. 덕분에 서머빌 영스 뷰티는 지금 더 활기차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소매점 탐방 BY BNB Magazine
BNB 매거진 2022년 8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