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재건’을 닮은 ‘재기’의 소매점 노아 뷰티서플라이

시카고의재건 닮은재기 소매점

노아 뷰티서플라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고층건물들과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어우러져 멋스러운 미국 중서부의 최대 규모 도시 시카고, 이곳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도심 지역이 완전히 파괴될 만큼 엄청났던 시카고 대화재(Great Chicago Fire)를 딛고 재건을 통해 미국에서 가장 큰 경제 중심지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강도 사건만 두 번을 겪은 것도 모자라  2년 전에는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눈앞에서가게가 부서지는 것을 처참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노아 뷰티서플라이의 노재영 사장은 시카고의 ‘재건’을 닮은 모습으로 다시 일어섰다.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다시 일어선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노재영 사장은 인하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유학생으로 부푼 꿈을 안고 시카고에 왔다.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의3학년으로 편입해 꿈을 키워가던 중 한국에 IMF 경제 위기가 닥쳤다. 한국에 돌아가야 했지만 이미 유학 생활 중에 출석하게 된 교회와 그곳의 사람들이 좋아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다. 미국에 남기로 한 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한인들이 종사하는 비즈니스는 한정적이었다. 세탁소 혹은 뷰티 업계 중에 노사장은 전공과 조금은 가깝게 뷰티서플라이 발을 들였고 시카고에서 유명한 뷰티서플라이 사장님 밑에서 7년 동안 직원으로 일했다.

일을 하면서 뷰티업이 전망 있는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흑인들의 삶 전반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마음을 굳혔다. 또, 한국에서는 자주 만나볼 수 없었던 흑인 손님들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향도 가치관도 크게 다른 경우가 많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사랑과 우정, 의리 그런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직원으로 일하며 그들을 다른 한 인간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도매상에서도 잠깐 일했었지만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도매 업계보다는 다양한 상품들의 시장 흐름을 현장에서 파악할 수 있는 소매업이 더 잘 맞는다는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7년을 일해서 번 돈으로 콘도 하나를 장만했다. 미국에 가족도, 친척도 없던 그가 혈혈단신으로 건너와 이뤄낸 작은 성과였다. 그리고 곧 현재 가게의 맞은편 모퉁이에 2,000스퀘어 피트의 작은 소매점을 차렸다. 그게 노아 뷰티서플라이의 시작이었다.

노아의 방주, 노아 뷰티서플라이

노재영 사장이 이국땅에서 만들어 낸 노아 뷰티서플라이는 그의 삶의 중심인 신앙과 닮은 모습이었다. 전나무로 만든 한 척의 배가 모든 종류의 동물을싣고 홍수를 이겨냈듯 그의 노아 뷰티서플라이도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는 자신의 소매점을 “그 수많은 동물과도 같은 만물을 담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노사장의 영문 성은 Noh, 그의 이름에 a 한 글자만 넣으면 노아(Noah)가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소매점을 운영하면서 위기도 많았다. 소득 수준이 높지 않고 정부 보조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이 많던 잉글우드 지역은 현재는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만해도 치안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처음 강도를 맞았는데, 직원의 소행이었다.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충격은 컸다. 믿었던 사람이 가게를 부수고 들어왔을 때의 그 실망감은 한동안 노사장을 괴롭혔다. 그렇지만 그 위기를 타산지석 삼아 가게 보안을 강화하기로 했다. CCTV를 달고 방범 시설을 늘렸다. 다시 올 수 있는 위협을 생각해 보험도 가입했다. 그는 오히려 이를 좋은 기회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도난 방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비책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동네 주민으로부터 강도를 당했다. 다행히도 보험 클레임이 잘 되어서 큰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경험은 흑인 폭동 때였다. 앞서 일어난 두 번의 강도 사건은 가게에 아무도 없던 때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때는 달랐다. 시위가 일어나자 가게가 있는 길거리에는 수백 명이 몰려들었고 그가 보는 앞에서 시위대는 방주와도 같은 그의 소매점을 때려 부쉈다. 가게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단체로 달려들어 마구잡이로 부수고 밟아대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건축물은 완전히 쓰러졌고그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살아남은 물건들을 주워 모았다.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협회 회원들이었다. 시카고 미용재료상협회 소속의 노재영 사장은 같은 피해자들과 함께 대처에 나섰다. 상대적으로피해를 적게 입은 소매점들도 있었지만 어떤 곳은 시위대가 불을 지르고 가서 물건 하나 건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위기의 순간에 빛나는 한인들의 단결력이 발휘됐다. 함께 모여 보험 클레임을 하고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다시 일어설 힘을 키웠다. 노재영 사장은 단 6개월의 휴지기를 보내고 원래 가게가 있던 맞은편 거리에 기존 소매점의 두 배 크기인 4천 스퀘어 피트의 매장을 새로 차렸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간판은원래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내부는 더욱 깨끗하게 꾸렸다. 노사장은 이번에도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삼았다.

팬데믹이 가져온 변화

코로나19로 인해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가게는 3개월 정도 운영을 하지 못했다. 늘 가게에 나와 있는 것이 익숙해진 노사장은 가게 문은 닫았지만 늘매장에 나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손님들 몇몇은 문을 열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커브 사이드 픽업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정말쉽지 않았다고 한다. 수천 가지의 아이템이 있는 가게의 특성상 전화 한 통으로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빠른 시간 내에 찾아 전달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전화가 오면 필요한 물건을 찾아 재빠르게 달려 나갔다. 숨 가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봉쇄령이 해제되고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진정되면서 몇몇 뷰티서플라이에서는 마스크, 장갑 등 방역 용품이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노아 뷰티서플라이는 입구에 다량의 마스크를 진열해 둔 모습이었다. 노사장에 따르면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마스크를 찾고 있는데, 여전히 방역을 위해 노력하는 손님들이 있는가 하면 마스크가 어느새 패션의 일부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수요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특히 화려한 마스크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작은 공간이 빛나는 마법

노재영 사장은 미술교육과 인테리어를 전공했다. 그래서일까 다소 답답해 보일 수 있는 건물 구조이지만 천장까지 높이 물건을 쌓아올리고 자투리공간을 활용하여 실제 규모보다 매장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작은 규모의 소매점에서 케미컬, 헤어, 잡화, 의류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모두 취급하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노사장은 “흑인 고객들은 원스톱쇼핑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들이 한 번 매장에 들리면 필요한 물건을 가능한 모두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래서 노아 뷰티서플라이에는 칫솔, 치약 등 생활용품부터 파티가 많고 사교 활동을 즐기는 흑인 고객들이 사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다.

크지 않은 매장의 장점이 있다면 오래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비교적 쉽게 물건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다녀간 고객들은모두 어떤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묻지 않고 주저 없이 익숙한 매대를 찾아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골라냈다.

노재영 사장이 물건을 계산하고 있는 모습

뷰티업계 전망? “아주 긍정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뷰티 소매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 비즈니스가 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인이 된 지금은 어떤 생각인지 물었다. 그는 뷰티업계의 전망을 아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온라인 비즈니스가 많이 뜨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오프라인 시장이 수축될 것이라고 보진않는다고. 여전히 가게에 나와서 직접 물건을 보고 바로 원하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그 경험을 손님들이 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사장에 따르면 시카고 손님들은 유행에 민감하게 따르기보다 기존의 취향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특정 제품이 일정 시기에굉장히 잘나가기보다는 어떤 흐름이 형성되면 꽤 오래 유지되는 편이다. 따라서 고객들과 계속해서 소통하고 그 흐름이 변하는 추세를 살펴 나가기만한다면 앞으로의 비즈니스 운영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매점을 운영하는 오너로서 한 가지 꿈이 있다면 당연히 가게 확장이나 2호점을 차리는 것. 극심한 인력난에 아직은 실현되기 어렵지만 그동안 오너의덕목을 갖추고 적합하고 믿을만한 매니저를 찾게 되면 한 번쯤은 시도해 보고 싶다고. 그날이 오기 기다리며 오늘도 노사장은 열심히 가게를 지키고 있다.

 

 

소매점 탐방 BY Jeehye Ra
BNB 매거진 2022년 9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