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뷰티서플라이에서 30년 여정을 걸어온 이인순 씨의 이야기

라떼는 말이야~

뷰티서플라이에서 30년 여정을 걸어온

이인순 씨의 이야기

뷰티서플라이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기성 점주들은 자신의 사업을 다음 세대에게 양도하고, 새로운 세대의 점주들은 흥미로운 패기와 열정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주인공들은 이전 세대들이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사골국의 깊은 영양과 맛처럼, 이전 세대의 경험은 새로운 도전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BNB에서는 30년간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하고 최근 은퇴하신 이인순 씨를 만나보았다. 쉽지 않았던 여정에서 보여준 그녀의 지혜와 경험을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1.인터뷰하고 있는 이인순 씨

 

부부 교사에서 뷰티서플라이 점주로 30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첫인사에도 따뜻함이 가득 묻어있는 이인순 씨는 한국에서 남편과 함께 안정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82년 지인의  권유로 이민 생활이라는 모험을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 생활을 결심한 후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 당시 이민자들은 거의 비즈니스를 했죠. 저도 비즈니스가 제길이라 생각하고 2년간의 시장 조사를 통해 작은 잡화점을 시작했어요. ‘유대인의 상술’이란 책을 거의 다 외울 만큼 부지런히 공부하며 매장을 운영했죠.정말 열심히 했어요.”

시간을 쪼개어 시장 조사와 상업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녀는 짧은 시간에 옆 드레스 매장까지 인수하며 성공 가두를 달리고 있었다.

인생의 길에서 찾아오는 안갯길

승승장구하던 그때 그녀는 더 큰 꿈을 위해 도매업으로 눈을 돌린다. “물건을 공급받는 일을 하다가 제가 직접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리를 좋아하고 자신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 니즈 분석을 통해 좋은 소시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고 남편과 함께 공장을 지었어요. 더 큰 모험을 시작한 거죠. 저희 소시지는 재료도 좋았고 정말 맛있었어요. 해마다 참가한 Food Show에서 큰 호평 받으며 대기업에서도 납품받기 위해 찾아왔었죠. 그렇게 성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찾아온 대기업 구매자들은 ‘한국 사람이 만든 소시지’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금세 상황을 이해한 이인순 씨는 그날로 공장 문을닫았다. 어떻게 폐업이란 과감한 결정을 했냐는 물음에 그녀는 한마디로 답했다. “저도 미국인이 만든 김치는 싫었을  테니까요.”

나의 운명이 뷰티서플라이

소시지 공장이 문을 닫은 후 그녀의 재무 상태는 처참했다. 낡은 차 한 대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때 마침 신문 기사광고 한 줄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1995년 뉴올리언스 한 시골 마을의 뷰티서플라이 매매 광고가 눈에 띄었어요. 뷰티서플라이가 생겨나고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지금과 달리 가발점과 잡화점이 결합한 형태였거든요.  잡화점을 해 보았던 경험이 저를 고민 없이 결정하게 한 것 같아요. 하지만 매장 매매 당시 제 수중에 돈이 없었어요. 조심스럽게 주인분에게 제 상황을 말했더니 인수금을 5년 동안 나누어 갚으라고 하셨죠. 정말 고마웠어요. 장사가 잘 안되는 가게였지만 전 자신 있었거든요.” 다시 시작한 뉴올리언스에서의 비즈니스는 1년 반 만에 인수금을 다 갚을 만큼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며느리도 모르는 그녀만의 운영 비법

1년 반 만에 매장 인수금도 다 갚고 또 지금의 안정적인 은퇴를 이끌어준 뷰티서플라이 운영의 비밀은 무엇일까?

과감히 고용한 뷰티션

“전 처음에 케미컬이 너무 어려웠어요. 직접 사용하는 게 아니다 보니 공부를 해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 인기 있었던 뷰티션을 수소문해 직접 고용했어요. 그 당시에는 뷰티션을 고용하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그들은 제가 모르는 걸 전문적으로 가르쳐주고 손님에게 상담해 주니까 장점이 많았어요. 손님들이 가발 하나를 사러 왔다가 뷰티션이 추천해준 액세서리나 케미컬 등을 한꺼번에 사 가기 시작했고요. 매출이 쑥쑥 올랐죠.

무서울 친절하게

요즘도 뷰티서플라이에서 많이 일어나는 문제 중 하나가 절도사건이잖아요. 너무 무섭고 두려운 일이죠. 저도 그 문제에 대해 항상 생각했어요. 방범에대해 신경 쓰고 대비책을 찾으려고 했죠. 그러다 한 기사를 읽었는데, 타주에서 여러 곳에 피해를 준 강도의 인터뷰였어요. 여러 곳을 돌며 소매점에 피해를 입혔는데, 강도가 유독 군데만 지나친 거예요. 기자가 이유를 물으니 ‘매장에서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에’ 그냥 나간 거라고요. 그이야기로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이후 저도 무서운 인상의 손님에게 더 친절하게 대했고요.“

재고를 인기 상품으로

경기가 어려웠을 때 휴먼 헤어 매출이 곤두박질친 적이 있었어요. 재고가 많았는데 단가가 높은 제품들이어서 정말 난감했죠. 직원들과 그  문제를 함께논의했는데, 재고 중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휴먼 헤어 가발을 유행하는 스타일로 재탄생시켜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마침 뷰티션이 있어 재고를 유행 스타일로 컷하고 염색도 해서 전혀 다른 제품으로 만드는 어려움이 없었고요. 고민거리였던 그 재고들은 저희 매장의 최고 인기 제품이 되었어요. 재고도 인기 제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인기 상품이 된 재고

 

뷰티 쇼가 별거 아니라고? 천만의 말씀!

제가 매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전국에서 열리는 뷰티 쇼에 자주 참석했던 거예요. 가만히 앉아서 도매상을 통해 듣는 제품 정보로는일정한 매출을 더 올리기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손님의 취향은 변해가고 새로운 손님도 오시는데 매장의 제품이 그대로면 발전이 있을까요? 아니겠죠.저는 무조건 가서 배우고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관련 업체분들과 친구도 되어서 아직 연락하는 분들이 많으니 이게 재산인 거죠. 또 뷰티 쇼가 주는 정보들은 정말 많은 거 같아요. 트렌드도 알려주고 제품의 다양함도 알게 되니 쇼에 다녀올 때마다 매장의 제품들이 새롭게 업그레이드되는 게 당연한 거고요.뷰티 쇼 안 가면 손해가 아닐까요?”

30 세월이 추억거리

오랫동안 매장을 운영해 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는 그녀는 어떤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까?

“저는 손님들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무례한 손님들이 꽤 많았거든요. 무례함을 당할 때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롭지만 그래도 미소짓고 친절함을 보여줬어요. 그 결과 손님들의 행동이 참 많이 달라진다는 걸 느꼈어요. 매장 운영을 시작한 초창기 때, 말로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무례한 남학생이 있었어요. 더 친절하게 대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죠. 십 몇 년이 지난 뒤, 그 학생이 아버지가 되어 찾아왔어요. 이미 타지로 이사를 갔지만, 제게 무례했던 자신의 지난 행동을 사과한다고 얘기하더군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어요. 뭔가 큰보상을 받은 거 같더라고요.

또 하나 추억을 얘기하자면, 저희 매장은 시골에 있어서 생계가 힘든 손님이 많았어요. 그분들이 한 달에 한 번 나라에서 제공하는 음식 상자를받는데, 손님 몇몇이 저희에게 꼭 그 상자에 든 채소나 캔들을 나누고 가시는 거예요. 그분들에게 그게 얼마나 소중한 음식인지 알고 받으니 고맙고 또 고맙더라고요. 지금도 가끔 채소를 보면 그때의 추억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줘요.”

 

NFBS 이사를 역임했던 이인순 씨

 

뷰티서플라이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뷰티서플라이는 저에게 모든 것을 준 소중한 곳이에요. 낡은 차 한 대를 집과 안정된 은퇴로 바꿔 주었고, 많은 친구와 감동적인 추억을 선물해주었죠. 매장을 지금 시작하시거나 하고 계신 분들은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을 거예요. 그럴 때 저는 여행을 가곤 했어요. 처음엔 매장이걱정되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더라고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누구보다 본인, 자신을 돌보라는 거예요. 힘들면 여행가고, 아프면 좀 쉬고… 조금 손해 보더라도 마음이 편한 결정을 하시라는 거예요. 점주분들 매장에만 있지 마시고 시원한 공기도 마시러 나가고 친구도 만들고일이 익숙해지면 꼭 다른 취미 생활도 하시면서 정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후배님들, 오늘도 힘내시고요!”

 

INTERVIEW By SOONAE KIM
BNB 매거진 2024년 1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