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Siia 전창일 대표 인터뷰

누구나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

Siia 전창일 대표 인터뷰

전창일 대표(좌)와 제이슨 리 과장

가을 정취가 무르익은 날, Siia의 전창일 대표와 제이슨 리 과장이 BNB매거진 사무실을 찾았다. 조지아 뷰티 페스티벌 참여를 성공리에 마치고 다소 고무된 표정이었다. 지난해 2월 뉴욕 맨해튼에서 야심 차게 런칭을 알린 Siia는 그야말로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런데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현재, 오히려 더 활발한 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었던 비결은 말그대로 ‘가족 같은’ 직원들과 전 대표가 걸어온 도전적인 삶의 여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생으로 사업에 뛰어들고 세일즈맨으로 일하다 헤어 회사를 인수하고 화장품 회사를 세우기까지, 자칭 타칭 ‘뷰티서플라이계의 돈키호테’라는 전창일 대표의 창업 스토리를 만나보았다.

 

유학생, 사업에 눈 뜨다  

전창일 대표가 미국땅을 밟은 건 스물일곱 살 때, 재활의학 공부를 위해서였다. 결혼부터 하고 가라는 장인의 명(?)에 아내와 함께, 당시 유명한 재활연구소가 있던 텍사스 주 달라스에 단기 정착한 것이다. “2년 코스였어요. 라이센스를 따고 돌아가서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죠. 사업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요”
빠듯한 유학생 신분이니 웨이터 등 파트타임 일을 했는데, 점차 그의 관심은 딴 데로 향했다. “와서 보니 미국 시장이 정말 크더라고요. 달라스에는 특히 도넛 샵이 많은데, 그걸 하면 부부가 한 달에 1만 불을 번대요. 젊을 때 바짝 벌어서 다른 걸 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유학 간 아들이 갑자기 장사를 한다면서 자금을 좀 보태 달라니 난리가 났다. “공부하라고 보내 놨더니 무슨 빵 가게를 하냐고 역정을 내셨어요. 그게 아니라 도넛입니다, 했더니 강화읍내 시장에 널린 게 ‘도나스’라며, 그럴 바엔 돌아와서 농사나 지으라고…”
장사 밑천을 마련하지 못한 그는 1년간 아내와 부부팀으로 도넛 샵 매니지먼트를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3년만에 자리잡고 어느 정도 자금이 모이자 그는 좀 더 큰 사업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때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 게 뷰티서플라이였다. “한인 도넛업계도 큰데, 뷰티서플라이는 한국 이민자들이 하는 사업 중 가장 크다고 하더라고요”

 

세일즈맨에서 CEO로

무모하게 곧바로 사업에 뛰어든 건 아니다. 전 대표는 2010년 Lord & Cliff로 유명했던 프리스코(Frisco)에 입사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신분을 해결해야 했고, 둘째는 세일즈하면서 더 많은 가게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현장을 접하면서 ‘얼른 소매점을 차려서 나가야지’하는 생각은 바뀌어갔다.
“2년차부터 리테일이 아닌 홀세일로 마음먹었어요. 굉장히 큰 마켓이란 걸 알았거든요. 6년 넘게 세일즈맨으로 뛰면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했죠. 내가 사장이라면 어떻게 결정할까, 이럴 땐 어떻게 대응할까… 그렇게 항상 준비를 해왔고, 그래서 더 많은 걸 배웠어요.”
45세 이전에 헤어 회사를 차리겠다는 한 길을 바라보고 달렸다. 그러다 2014년 즈음 전 대표는 헤어에서 화장품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미 전역을 다니다 보니까 헤어 시장은 한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2014년에 NYX가 로레알에 비싸게 매각되는 걸 보고 실감했어요. 아, 화장품을 해야겠구나. 내가 서있는 마켓이 금밭이구나.”
그런데 뜻대로 안되는 게 세상사라고, 2016년 갑자기 프리스코가 문을 닫으면서 전 대표는 엉겁결에 헤어 회사를 맡게 된다. “일했던 분들이 공중에 붕 떠버린 거예요. 어차피 물건이 있으니 전 차장(당시 직급)이 좀 맡아주라, 아니다, 몇 번 고사하다 결국 하게 된 거죠.”
폐업으로 멈췄던 기존 공장을 살리고, 직원도 그대로 살려서 간 것. 그게 바로 ‘로즈 데 누잇(Rose De Nuit)’의 출발이었다.

 

로즈 데 누잇… 밤에 피는 꽃?

2017년 1월, 로즈 데 누잇은 텍사스 달라스 소재 ‘신생’업체로 닻을 올렸다. 프리스코사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의기투합해서 세웠지만 다른 회사라는 것이다. Rose de Nuit(줄여서 RDN)은 ‘밤에 피는 꽃’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절망 속에서 희망을 피워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름처럼 설립 초기, 시장 진입은 쉽지 않았다. “회사 시작부터 많은 루머들이 돌았어요. 근거 없는 흑색선전도 있었고, 프리스코에서 해결하지 않은 미수금을 우리에게 항의하는 가게들도 있었죠. 그 손해를 RDN에서 안았습니다. 피해 가게에 저희 제품을 무상 지급한 거죠. 저를 믿고 온 직원들이 영업 전선에서 꼬리표를 달고 다니지 않도록.”
그렇게 신용을 다시 만들어가는 데 1년이 걸렸다. 그리고 RDN이 안정된 궤도에 올랐을 때, 전 대표는 잠시 접어 뒀던, 글로벌 코스메틱 브랜드를 향한 꿈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메이드 인 코리아’ 화장품 개발 과정

“제품 개발을 2018년도부터 했어요. 한국의 경희대학교와 조인을 하고, 시중의 저가부터 고가까지 화장품 샘플을 다 보냈어요. 랩에서 그걸 다 녹여서 연구를 한 거예요. 1년 동안 분석하고, 결과 나오면 샘플 만들고, 샘플 제형 뜨면 마켓 리서치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2019년 9월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 거죠.”
이런 과정에서 일화도 많다. 전 대표는 특히 아내에게 원망을 들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제가 샘플링하려고 화장품을 종류별로 다 가져 왔잖아요. 그때 딸이 네댓 살이었는데, 여자애가 얼마나 바르는 걸 좋아해요. 바르고 피부 트러블이 생겨서 아내가 엄청 뭐라 했죠. 이런 거 갖고 오지 말라고. 그런데 씨아(Siia)를 만지면 트러블이 없어요. 식물성 성분이니까.”
화장품을 만들겠다 생각했을 때는 자연스레 중국을 염두에 두었다. 그렇게 방문한 중국에서 전 대표는 ‘메이드 인 차이나’와 ‘메이드 인 코리아’의 극명한 차이를 봤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제품이 이미 만들어져 있어요. 일명 ‘판갈이’라고, 원하는 디자인과 패키지만 주면 레이블만 갈아주는 거예요. 중국 식약청에서는 식품이나 약만 규제하니까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거죠. 반면 한국 식약청 KFDA는 바르는 것까지 철저히 관리를 해요. 한국사람들이 워낙 그런 문제에 민감하니까.”
당시 미국 내에서도 중국제 화장품의 해로운 화학성분 때문에 피해자 사례가 늘면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는 등 움직임이 생겨나던 시기였다. “멀리 보고 좋은 원료로 퀄리티를 높여서 ‘메이드 인 코리아’로 가자 결심을 했죠. 어차피 한국시장에도 갈 거니까”

“누구나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 –Siia의 탄생

Success(성공), Influence(영향력), Imagination(상상), Adventure(모험) 네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Siia’의 이름에는 전 대표가 꿈꾸는 이상이 오롯이 담겨있다.
“우리가 꿈꾸는 건 ‘뷰티의 민주화’예요. 누구나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는 거죠. 특정 인종이 아니라 모든 인종을 대상으로, 좋은 성분의 질 좋은 화장품을 개발해서 뷰티서플라이 시장에서 코스메틱의 상품 가치를 높이려는 거예요.”
2019년 2월 19일 뉴욕 맨해튼에서 언론사 기자들과 뷰티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Siia 코스메틱의 글로벌 브랜드 런칭쇼 행사가 화려하게 열렸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 거대한 암초를 만날 줄은 행사에 참석했던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런칭쇼 행사를 장식한 Siia의 마케팅 버스(스쿨버스 개조) 내부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던 코비드

“작년 3월에, 저랑 제이슨 과장이 애틀랜타에 있었어요. 소매점을 몇 군데 돌고 숙소로 들어오는데 마트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뉴스를 보니까,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더라고요”
제이슨 리 과장도 생생하게 당시를 회상한다.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회사에서 빨리 돌아오라고 연락이 오는데, 저희는 그럴 리가 없다면서 잭슨빌로 내려 갔거든요. 도중에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는 거예요. 오지 말라고. 지금 가게를 닫고 있다고”

 

쓰러지고 얻은 것

홍보 전략과 소매점 미팅 약속이 빼곡히 잡혀 있었다. 팬데믹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자 그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잠도 못 자고 새벽에 텅 빈 회사에 가서 그냥 앉아있는 거예요. 내가 뭐가 잘못됐을까, 이런 생각만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정 대표는 길에서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거죠. 턱 세 곳이 부러졌어요. 이도 나가고. 그래서 제가 본의 아니게 양악 수술과 치아 교정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시기가, 전 대표에게는 오히려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일이 없었다면 아마 몰랐을 거예요. 이전에는 앞만 보고 쭉쭉 갔는데, 멈춰 서서 점검을 한 거예요. 지금 가진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팬데믹 기간에 Siia는 회사 조직을 재정비하고 제품 개발에 힘쓰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2만 4천 불로 거창하게 시작했던 디스플레이를 1만 6천 불, 5천 불로 낮추고 다양화했다. 그리고 올가을 재개된 조지아 뷰티 페스티벌에서 다시 가능성을 선보였다.

 

특별한 경영철학이 있나요?

다소 거창한 질문에 명쾌하게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내놓는 전 대표. “영업에서 배운 건데,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면 내가 틀렸거나 요구가 과한 부분이 보여요. 내가 싫은 걸 강요하지 말자, 그러면 사고가 안 나더라고요”
오죽하면 미국인 직원들도 ‘역지사지’란 말을 알아 듣는단다. 그런데 가끔은 역지사지가 과하다고, 제이슨 과장이 말을 보탠다. “저희한테는 항상 냉정해져라, 3개월은 지켜봐라 해놓고 대표님은 이미 신입사원을 돕고 있어요. 성인인데 집에 손 벌리지 말아라, 대신 내줄 테니 나중에 갚으라 하고. 아파트 렌트 때도 크레딧이 없으면 직접 가서 사인해 주고.”

 

우리는 남이다!

오히려 가족에겐 냉정한 편이다. RDN부터 함께해온 구매·영업 담당 제이슨 리 과장은 전창일 대표의 처남이고, Siia의 런칭 전 합류해서 재무를 맡고있는 케빈 최 이사와는 동서 지간이다. 피는 안 섞였지만 가족인 셈이다. 그러나 전 대표는 늘 강조한다. “우리는 남이다!” 라고.
“직원들도 가족인 걸 아니까, 오히려 남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모범을 보이라고 해요. 물건이 들어오면 팔을 걷어붙이고 제일 먼저 창고에 달려가서 우리가 뜯고요. 묵묵히 따라와줘서 그게 너무 고맙죠.”

 

직원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CEO

제이슨 리 과장 또한 가족 이전에 상사로서 전 대표를 평가한다. “대표님은 결과론적인 평가를 안 해요. 신입사원의 경우는 자기 혼자 가발 수백 개를 팔겠다고 황당한 계획을 세우는 경우도 있어요. 대표님은 안될 걸 알면서도 지지해줘요. 결국 그 직원이 성과없이 돌아왔을 때 절대 질책하지 않고 같이 리뷰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그러니까 점점 더 성장하더라고요.”
당장의 영업 성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는 비즈니스가 마라톤이라고 생각해요. 순간에 반짝여서 없어지는 별보다는 꾸준히 올라가는 게 중요한 거죠.“ 전 대표의 입장에선 Siia를 구성하는 직원 하나하나가 함께 뛰는 마라토너인 셈이다.

제이슨 리 과장, 조지아 주 세일즈를 담당하는 알렉스 윤 직원과 함께

돈키호테가 꿈꾸는 ‘뷰티 민주화’ 세상

Siia는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전 인종을 대상으로, 미국팀과 한국팀에 더해 중동팀을 만들고 미국 시장을 넘어 전 세계 공략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뷰티의 민주화’를 슬로건으로 고객들에게 묻는다.
“누구나 아름다울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이런 스토리에 반해서 수많은 명품 브랜드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제임스 칼리아도스(James Kaliardos)가 Siia의 홍보대사를 맡아주었다.

 

James Kaliardos introducing Siia Cosmetic on YouTube

전 대표가 스스로 ‘돈키호테’라 칭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뷰티 마스터 박 회장님이 붙여주신 별명인데,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합니다. 저는 뷰티 시장이, 어쩌면 한국인의 역사를 하나 세웠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제품의 질을 높이고 좋은 가격으로 경쟁을 하면, 회사들도 더 건강하고 좋은 제품을 내고, 회사도 거래처도 서로 좋은 거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이제껏 잘 이끌어왔던 뷰티 시장을, 앞으로도 충분히 우리가 주도해서 갈 수 있는 거죠. 그런 생각으로, 돈키호테 같은 자세로 나아가려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뷰티서플라이계에 돈키호테 한 명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뷰티션 인터뷰 BY Juyoung Sung
BNB 매거진 2021년 12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