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세일즈맨과 뷰티서플라이 매니저 출신, 소매점 사장의 애환과 꿈

Dream Hair Beauty Supply

4년차 뷰티서플라이 사장 김수덕(53세)씨는 개업 전에는 헤어 세일즈맨과 뷰티서플라이 매니저로 일했었다. 그는 백인 주민이 대다수인 테네시주의 작은 도시에서 2017년부터 뷰티서플라이를 창업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일즈맨과 매니저 시절 겪은 역경이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사업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소자본으로 창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사업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이제는 2호점 개점을 준비하는 등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의 일과 인생에 얽힌 애환과 미래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테네시주의 중앙에 위치한 음악의 도시 Nashville. 그곳에서 북쪽으로 약 20 여분 운전해서 올라가면 평범하고 아담한 Gallatin이라는 소도시를 만난다. Gallatin은 최근 인구 유입이 늘고 도시가 커지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되고 있는 곳이다. 10여년전 3만명 남짓했던 인구는 지금 4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백인 인구가 77.8%이고 흑인인구는 14%이다. 최근에는 내슈빌의 비싼 주거비용과 높은 범죄율을 피해서 이곳으로 이주하는 흑인이 늘고 있다.

김수덕(53세) 사장은 4년 전인 2017년 5월 이곳에 ‘Dream Hair World Beauty Supply’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도시의 핵심 상업지역에 4,000sf의 평범한 수준의 가게다. 그는 창업 3년 만에 각고의 노력 끝에 모든 부채를 갚아내고 사업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돈은 허투루 쓰지 않고 사업에 재투자하며 2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약하게 태어난 딸아이를 위해

김수덕 사장은 2008년 헤어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취업비자를 받아, 부인 이인경씨(50세)와 아들과 딸 두 자녀를 데리고 도미했다.
한국에서 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더 나은 자연 환경을 찾아 이민을 결심했다고 한다.
“제 딸아이는 한국에서 자랄 때 1년에 60번 이상 병원을 찾을 정도로 감기가 떨어지질 않았어요.”
“딸을 약하게 태어나게 했다는 미안함이 컸었죠.”
그렇게 허약했던 딸아이는 미국에 와서 건강하게 자라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딸아이는 꽤 큰 체격인 아빠와 지금은 키가 똑같을 만큼 건강하게 성장했다고 한다.
“취업 비자로 미국에 와서 신분 불안정 등으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주어서 그게 가장 큰 보람인 것 같아요.”

 

너무 힘들었던 헤어 세일즈 시절

미국에 온 후 헤어 세일즈 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H1 비자라는 신분의 족쇄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낮은 급여와 장시간 근무를 견뎌내야 했어요. 혹사를 당했죠”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민 신분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그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헤어 회사를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권 스폰서을 제안한 내슈빌의 한 뷰티서플라이에 매니저로 취업하고 부인과 함께 7년을 일했다. 그곳에서 5년 만에 영주권을 취득했다

 

뷰티서플라이 매니저에서 사장으로

그는 매니저 생활 7년을 정리하고 2017년 현재의 가게를 차려 독립했다. 이것도 아이들 양육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대학 학자금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매니저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오히려 모아둔 돈을 까먹게 되니까, 그 돈이 다 없어지기 전에 아예 직접 차려야겠다고 결심했죠.”

 

기존 가게 인수보다는 새로 오픈

김사장은 기존 가게를 인수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직접 새로운 가게를 차리는 것을 선택했다.
“매니저를 해봐서 기존 가게에 재고가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 지 제가 뻔히 알잖아요. 기존 가게를 매수하면 안 나가는 재고까지 다 떠넘겨 받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힘들지만 새로운 가게를 차려서 제 입맛대로 물건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길을 택했죠.”

 

세일즈맨과 도매회사에 대한 의리

김사장은 새로 가게를 차리면 물건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세일즈맨과 헤어 도매회사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고 한다. 자본이 충분치 않으니 부채를 여기저기 돌려 막기 급급했다. 그런 그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대준 세일즈맨과 도매회사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고, 의리를 끝까지 지키려고 한다고 말한다.
“저는 개업 3년만에 외상 빚을 모두 갚았어요. 돈이 생기면 다른 곳에 낭비하지 않고 외상 빚을 우선 변제하고 물건 오더하는 것에 쏟아 부었어요.”
“세일즈맨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어요. 그분들이 텀(외상)을 주고 믿고 기다려 줬기 때문에 가게를 차리고 운영할 수 있었지요. 세일즈맨이 소속된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세일즈맨 혼자 결정하겠어요? 그 분들의 은혜는 결코 잊지 않습니다. 이분들의 물건은 우선 오더를 넣습니다. 저는 도움을 주신 그 회사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아요.”

 

물건이 곧 돈이죠

그의 4,000sf의 가게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정말 빈틈이 없이 물건으로 꽉 채워져 있다.
창고, 사무실, 하물며 화장실까지 물건 박스로 넘쳐난다. 거기다 가게 근처에 스토리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곳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돈 벌면 물건을 계속 쌓았다.
“물건이 있어야 장사합니다. 물건이 곧 돈이에요. 없으면 못파니까.”
“물건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으니까 이제 빨리 2호점을 내야죠. 지금 가게가 너무 좁아요”

 

매장 전후좌우 바닥부터 천장까지 물건으로 빈틈이 없이 꽉 채워진 매장 이모저모

 

바로 옆 Cosmo Prof 매장은 경쟁이 아닌 상생관계

Dream Hair World는 특이하게도 전국적인 미용제품 체인점인 Cosmo Prof와 나란히 붙어 있다. 같은 뷰티업종인데, 어찌된 영문일까?
“제가 이곳에 뷰티서플라이를 계약하려고 할 때 Cosmo Prof 매장이 바로 옆은 아니지만 이 몰 안에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우리 가게가 들어온다고 하니 동종 업체라고 반대가 심했지요. Cosmo Prof는 주로 백인 뷰티션들을 상대로 파는 곳이어서, ‘우리와 비즈니스 영역이 다른 곳’이라고 설득했어요.”
김사장이 가게를 차리고 나서 백인 손님만 있던 Cosmo Prof에 오히려 흑인 손님들이 차츰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얼마 후 Cosmo Prof가 아예 바로 옆자리로 확장 이전해 왔다고 한다.
“그후 저희 가게에도 백인 손님이 와서 하루 매상을 책임져주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백인 손님들은 비싼 클립입 익스텐션을 가격 신경 안 쓰고 사가거든요. 1명이 한 번에 1,000불 정도 사가는 경우도 많아요.”
사실 김사장은 매니저 시절부터 백인 손님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백인이 대다수인 이 도시를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Dream Hair Beauty Supply 바로 옆 Cosmo Prof 매장

 

직원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에 상응하는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제가 매니저 때, 일을 하다 보면 때때로 직원들이 안나와 일을 땜방해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안 나오는 직원 몫의 급여를 일하는 나머지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장님들은 거의 없어요. 거기에서 직원의 불만이 생기는 거죠.”
김사장은 그래서 자신이 과거 직원일때 받고 싶었던 그 마음을 알기에, 직원 입장에 서서 그들에게 혜택을 돌려주고 있다고 한다.
“직원 3명 중 1명이 안 나오면, 그 사람 일을 출근하는 사람들이 분담하게 되잖아요. 안나오는 직원의 급여 중 100%를 나눠주라는 것은 아니죠. 두사람에게 20%씩이라도 나누어 주면 되는데 대부분 그런 걸 안하시죠.”
“저희 부부가 가끔 물건을 하러 나간다거나 해서 가게를 비우는 경우, (손가락으로 Christiy를 가르키며) 지금 저 직원에게 가게를 맡깁니다. 그 직원이 혼자 고생했기 때문에 옛날에 제가 받고 싶었던 것을 해줍니다. 100%을 다 줄 수 없어도 50%라도 챙겨주죠. 안 받을려고 해도 강제적으로 줍니다. 일요일은 시급의 1.5배을 지급합니다.”

 

팬데믹 기간 직원이 없어서 초죽음

“저희도 팬데믹에 직원 부족으로 심하게 시달렸어요. 셧다운 명령으로 문을 못 연 한달 동안 커브사이드 장사를 할 때, 손님 1명이 오면 브레이드를 팔기 위해 긴 매장 저 안 끝까지 열 번 정도를 왔다갔다했어요. 그러니 돈도 많이 벌 수가 없죠. 그래도 그 어려운 시점에 장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직원이 안나오니까 1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날라’ 다녔어요. 가게 앞에 아이래쉬 같은 작은 것을 꺼내 놓고 팔고, 한마디로 죽음이었어요.

 

2호점 차리는 이유

김사장은 팬데믹 이후 불확실한 경제전망이 불안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호점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를 3가지 들었다.
첫째, 현재 가게가 좁다. 둘째, 바잉파워를 키울 필요가 있다. 셋째, 앞으로도 뷰티서플라이 장사 전망이 밝다.
“옛날 세일즈맨은 정이 있었어요. 서로 가게 사장과 형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죠. 사장이 잠깐 집에 다녀온다면 가게를 대신 봐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세일즈맨들은 이 물건 오더하지 않으면 저 물건도 안준다고 협박해요. 속이 부글부글하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은 ‘바잉’을 해줘야 설움을 안당해요.”
“뷰티서플라이는 망해도 남는게 있어요. 음식점은 처음 기계를 살 땐 정말 비싸지만 망해서 버릴 때는 돈주고 버려야할 것들 것 많아요. 하지만 뷰티서플라이는 망할 것 같으면 있는 물건들 세일해서 팔면 돼요. 재고는 어떻게 해서든지 처분이 가능하죠. 주변 다른 사장님들한테 딜해서 넘길 수도 있고요.”
“이것은 다른 분야에 비해 (이익을) 많이 뽑을 수 있는 장사에요. 흔히들 머리는 2배, 가발은 3배, 케미컬은 1.5~1.7배, 잡화는 2배를 남긴다고 해요. 간혹 어떤 품목은 원가의 3-4배까지 남길 수 있어요. 이것저것 운영 비용 다 빼더라도 30~40% 정도 마진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직업을 천대시하는데 직업에 귀천이 없지 않나요? 물론 위험한 곳에서 장사하는 경우도 많지만…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고상하게 살았나요? 미국와서 주류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나요? 뷰티서플라이 업은 비록 힘든 직업이지만 나쁘지는 않아요.”

 

매니저에서 사장이 되어보니

김사장은 직원에서 오너가 되어보니 인벤토리 관리와 사람 관리가 힘들다고 한다.
“큰 가게에서 물건 오더를 담당했던 매니저가 가게 차리면 조심해야해요. 큰 가게에서 했던 그 버릇대로, 자신의 작은 가게에서도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오더하게 되어서 힘들어질 수 있어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인터뷰하는 사무실에 가득 쌓인 물건 박스가 기자의 눈에 들어온다.
“또 직원들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요. 언어적인 문제로 직원이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직원이 나중에 제가 말한 것을 이해 못했다고 변명을 해댑니다. 그러면 포기하고 제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해요.”

물건박스가 가득 쌓여 있는 사무실

 

2호점 개점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나?

김사장은 2호점을 준비하며 믿고 맡길 직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그에게 소중한 흑인 여성 매니저가 있는데 그녀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는 한국사람이 없어요. 믿고 맡겨야 할 ‘흑인’ 매니저가 있어야 해요. 지금 일하고 있는 크리스티(45세)에게 직원 트레이닝과 급여지급, 해고 권한까지 줄 예정이에요. 원래는 맥도널드 매니저였는데 밝고 성실하고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해요.”
“직원들에게 월급 많이 주고, 다른 데서 일하는 것보다 여기가 더 낫다고 느끼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내가 가져가는 돈은 조금 적게 가져가더라도 더 높은 급여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지요”
“그래서 뷰티서플라이 업종에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정착되면, 체계적으로 경영이 가능해져 나중에는 자식에게도 대물림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될거예요.
“앞으로 계속해서 가게를 점차 늘려갈 생각이에요. 그러다가 때가 되면 신뢰할 수 있는 매니저나 세일즈맨에게 가게들을 넘겨줄 예정이에요. 그들이 당장 인수할 돈이 없더라도 벌어서 조금씩 갚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업 확장의 딜레마–다른 가게에 피해가 없게

그는 가게를 늘려갈 생각을 하면서도 기존의 다른 가게들에 피해를 줄까 매우 조심스럽다.
“1호점을 차릴 때는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 주죠. 그냥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2번째는 돈을 벌기 위해 들어가고, 3번째는 힘을 키우기 위한 거예요. 단순히 먹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서 더욱 많은 견제를 받게 되죠. 조심스러워요. 2호점 자리를 물색하며 기존 가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곳을 찾게 되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갈수록 너무 각박해지는 것 같아요. 경쟁 가게끼리 적대시합니다. 너무 외롭죠. 앙숙 관계의 중간에 있는 입장도 괴로워요. 다 친하게 단합하며 지내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서로 도움을 줄 수 있고 도네이션도 같이하고…미력하나마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직원 Christy, 김수덕 사장, 부인 이인경씨(왼쪽부터)

소매점 탐방 BY Samuel Beom
BNB 매거진 2021년 8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