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업계 전략가 라성원 사장과의 만남

뷰티업계 전략가 라성원 사장과의 만남

LA 공항 근처 Beauty 4U 매장에서 라성원 사장을 만났다. 인근 롱비치에서도 같은 이름의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홀세일과 리테일, 유통과 매장 운영까지 두루 경험한 그는, 30년 가까이 뷰티 산업 안에서 살아왔다. 이민 생활 대부분이 이 일 안에 있었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키워냈으며, 지금은 일하는 즐거움만 남았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이 업계를 오래 지켜본 라 사장이 요즘 뷰티서플라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매장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홀세일에서 리테일로, 라 사장의제대로 된도전

매장 앞에서 만난 그는, 직접 타온 커피믹스를 쓰레기 수거 기사에게 건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익숙한 일상속에 그만의 방식이 담겨 있다. 며칠 전엔 파킹랏에 노숙자가 밤에 노숙을 하는 것을 보고 안전 문제로 경찰에 리포트 했지만, “밤에만 잠깐 자고 가면 안 되냐”는 말에 자리를 허락했다. “나잇 쉬프트 가드라고 생각하면 괜찮잖아요.” 웃으며 덧붙였다. 매장 안팎의 공기도, 그는 그렇게 사람을 통해 바꿔간다.

 

한때 메이저 헤어 회사의 전무로, 중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공장은 물론 인도 수도원까지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던 라성원 사장은 6년 전 리테일을 직접 해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매장을 운영해보니 전혀 다른 세계였다. “홀세일 경험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여긴 완전히 다른 판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리테일 쪽에서 기준이 되어준 사람, Beauty 4U의 석균욱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리테일 좀 해보려는데, 도와주세요.”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석 대표는 운영 시스템부터 매장 구조까지 아낌없이 조언해줬다. 물론 오랜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라 사장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를 짚는다. “저는 석 대표님이 ‘사적인 믿음’과 ‘일에 대한 태도’를 정확히 나눌 줄 아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석 대표님은 늘 그걸 지키세요. 그래서 존경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웃으며 이런 제안도 던졌다고 한다. “간판도 좀 쓰면 안 될까요?” 돌아온 대답도 유쾌하다. “그래라. 나 죽을 때쯤이면 너도 은퇴하겠지.”

 

 

라성원 사장이 배운 리테일

90년대 초중반, 대부분의 뷰티 매장이 위그와 OTC 프로덕트를 따로 파는 작은 구조였을 때다. 그는 “이제 헤어도 해야 한다”고 권하는 세일즈 맨이었고, 사장님들은 “좁은 가게에 무슨 헤어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라 사장은 시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뷰티서플라이 형태를 갖춘 매장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백화점 자리를 개조한 대형 매장의 오픈 소식도 들려왔다. 그 무렵, 워싱턴 D.C. 근처 도로에 걸린 “세상에서 가장 큰 뷰티서플라이” 간판이 업계의 시선을 끌었다. 바로 Beauty 4U였다. “그때가 진짜 뷰티서플라이의 르네상스 시대였어요. 해마다 20~30%씩 매출이 올랐죠.” 하지만 그는 단순히 매장의 몸집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산업이 지금처럼 성장하긴 어려웠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Beauty 4U의 접근 방식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테리어, 진열, 조명 같은 요소에 별도로 예산을 배정하고, 운영비와 인건비까지 계산해 남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때 석 대표에게 들은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흑인 고객들도 넓고 깨끗한 공간에서 돈 쓸 권리가 있어.”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팔고 어떤 환경을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방식이 꼭 정답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게는 출발점이었어요.” 지금 그가 운영하는 매장에도 그때의 고민들이 곳곳에 반영돼 있다. 진열 방향, 고객 동선, 가격 배치, 첫인상까지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정리하고 있다. “결국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대로, 나한테 맞는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거죠. 그 시작이 뭐였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때 본 Beauty 4U라고 말할 거예요.”

 

라성원 사장이 말하는 리테일의 디테일

그가 운영하는 매장은 단정하고 쾌적하다. 진열 하나, 가격표 하나에도 허투루 배치된 것이 없다. ‘전략적 디테일’로 움직인다.

 

1. 진열의 기준은안정된 공급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물건이 없으면 안되잖아요.” 라 사장은 유행보다는 공급의 안정성을 우선순위에 둔다. 그래서 매장 앞쪽에는 늘 재입고가 가능한 스테디셀러를 배치한다. 손님 입장에서도 믿고 찾을 수 있고,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훨씬 편하다.

2. 누구나기죽지 않고쇼핑할 수 있어야

“저는 가격이 품질보다 더 중요하게 시장을 건든다는 것을 리테일 하면서 알았어요. 가격은요,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어느 선을 가면 안 돼요. 소비자들의 주머니라는 게 한계가 있어요. 이 스타일과 이 제품에 얼마까지 쓰겠다라는 선이 있죠.”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30달러대 레이스 없는 통가발을 입구 쪽에 진열하고, 가격표도 큼직하게 붙인다. 누구든 부담 없이 고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실제로 이 제품군은 마진도 좋은 편이다. “어떤 가격은 소비자를 위축 시키거든요. 저는 그게 좋은 접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도 여기서 편하게 구매하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도록 제품을 배치해요.”

3. 결국은 포니테일

최근  라 사장은 드로스트링 포니테일 제품군을 적극적으로 늘렸다. “그 많은 젤과 엣지 젤이 팔리는 것은 모두 하나의 스타일을 향합니다. 슬릭백이죠.  19~25불이면 손님도 부담 없고, 회전도 빨라요. 일주일 쓰고 또 사시는 분들도 많고요.” 다만, 제대로된 슬릭백 스타일에 눈 뜬 젊은 세대가 맘껏 즐길 수 있는 얇고 가벼운 캡이 출시되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드로스트링 종류는 30종에서 50종으로, 컬러는 6색에서 10색으로 확장 했다

 

 

4. 재고는보일 만큼, 돌아갈 만큼

“안 보이면 안 팔려요.” 라 사장은 재고를 박스로 쌓아 두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보기 좋게 진열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손님이 찾기 쉽고 직원이 정리하기도 편하며, 진열이 깔끔하면 구매 전환도 훨씬 빨라진다고 말한다.

5. 트렌드는 시선을 빼앗는 손님에게서 확인

“리테일 하면  트렌드 흐름을 빠르게 알 수 있어서 좋아요.” 그는 유독 눈에 띄는 고객이 뭘 고르고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를 유심히 본다. 그리고 물건을 찾는 손님들의 요청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도매상에서 일할 때 리서치가 트렌드 습득의 방법이었다면, 소매는 현장에서 느끼는 느낌이  트렌드 그 자체라고 했다. SNS 와 온라인 서치가 자유로운 지금의 소비자들은 도매가 만든 제품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을 찾는다는 것을 라사장은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선의의 경쟁은 업계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요즘 보면, 새로운 플레이어 하나만 생겨도 ‘우린 끝났다’는 분위기가 돌아요.” 라 사장은 그런 과잉 반응을 경계한다. “경쟁은 늘 있어요. 업계가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그는 경쟁자를 위협이 아닌, 흐름을 자극하는 촉매제 같은 존재로 본다. 라 사장이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한국계 사업자가 여전히 절대적 우위를 가진 단 하나의 영역—바로 헤어다. “생존 전략상 줄일 수는 있어도, 헤어는 뷰티서플라이의 아이덴티티예요. (디자인으로 강조 부탁드립니다) 그걸 놓치면 달러 스토어나 대형 체인 스토어한테 치일 수밖에 없어요.” 케미컬이나 일반 뷰티 제품은 월마트도, 얼타도 다루고 있지만, 헤어만큼은 다르다고 덧붙인다. “공급, 생산, 개발, 아직도 우리가 주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는 매장에 들어서는 손님에게 가장 먼저 가발이 눈에 띄도록 진열한다.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이 가게는 가발 파는 집이구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그래야 손님도 기억하거든요.”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사람

라 사장은 한인 뷰티서플라이 산업이 반세기 넘게 버텨온 이유를 떠올리며, 시기마다 꼭 한두 명씩, 회사든 리테일이든 업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들이있었다고 회상한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먼저 도전해서 길을 닦으면, 2~3년 뒤 그 흐름을 따라오는 이들이 생기고, 그게 다시 시장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늘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늘 새로운 시작이 있었어요. 제가 일했던 로얄의 정진철 대표님이 휴먼헤어 산업의 대중화 측면에서 그런 분이셨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Beauty4U 라는 소매 브랜드를 일군 석균욱 대표님이 소매점 측면에서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 두 분과 일하며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 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을 더 안타깝게 본다. “경기가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이 산업을 다음 단계로 끌고 갈 사람이 보이지 않아요.” 마케팅, 고객 경험, 제품력—그 세 가지를 함께 고민하고, 다음을 준비할 누군가가 다시 나타나길 바란다는 그의 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우리 역시, 그 시작이 곧 오길 희망해본다.

 

 

 

STORY By HEEJIN SONG

BNB 매거진 2025년 8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