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상사 김병철 사장–10. 집으로: 50년 여정의 마침표

미성상사 김병철 사장–10.
집으로: 50년 여정의 마침표

 

지난 이야기
[1983년, 미성상사의 아프리카 진출 계획에 따라 세네갈로 파견된 김병철 사장은 헤어 브랜드 ‘NINA’를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10년간 근무했다. 한국 본사로 복귀할 줄 알았던 그는, 199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장 총괄로 부임하면서 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그러던 중, 2018년의 큰 화재로 공장이 전소되는 사고를 겪어, 이를 계기로 공장을 수카부미로 이전하고 ‘NINA’라는 새 이름으로 출발하게 된다. 새 공장은 ‘따만 히자우(녹색 공원)’도 꾸며지고, 5S 운동, 하이테크 제도 도입 등으로 근무 환경이 개선되며 계속해서 탈바꿈해간다.]

 

매일 살아 숨 쉬는 공장

다년간 여러 공장을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조직이 살아 있으려면 숨 쉬는 유기체처럼 끊임없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변화가 멈춘 조직은 생명력을 잃는다. 한편, 변화를 꺼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끼리의 유대감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협동심을 기르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함께했다. 마침 수카부미 근처에는 좋은 계곡이 있었다. 물살을 가르며 함께 노를 젓는 ‘래프팅’은 팀워크를 다지기에 그만이었다. 공장 잔디밭에서는 점심시간 후 부서 대항 ‘풋살’ 시합이 열렸다. 선수와 응원단이 하나 되어 외치는 함성 소리가 공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모두가 함께 단합 래프팅!

 

잔디밭 풋살 대회에 참여한 종업원들

대면 인사 또한 중요했다. 나는 종종 일찍 출근해서 따만 히자우(녹색 공원)를 통해 들어오는 직원들을 맞이했다. “슬라맛 빠기(Selamat Pagi: 좋은 아침)!”라고 인사하고, 퇴근길에는 “슬라맛 잘란(Selamat Jalan: 잘 가요)!”이라고 배웅했다. 서로의에게 친밀감을 주는 인사인 동시에 책임자와 직원이 얼굴을 마주하며 나누는 교감이기도 했다.

이렇게 쌓아올린 끈끈한 유대감이 공장에 어려움이 닥칠 때, 이를 극복하는 단단한 힘이 되리라 굳게 믿었다. 늘 개선할 점을 찾고 직원들과 의논하고 실행했다. 변화시킬 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땐, 공장에 페인트 칠이라도 새로 하여 생동감을 유지하려고 했다. 공장을 방문하는 바이어들은 미성 니나는 늘 무언가 바뀌어 있다며 긍정적으로 말해주어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공장 행운(바하기아)의 교량

 

인생의 변곡점

해외 근무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질병 관리다. 언젠가부터 몸이 뻐근하고 여러모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느껴 현지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 후 특별한 이상이 없다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나 또한 증상이 차츰 나아지는듯 해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2018년, 한국 방문길에 세브란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전립선암’에,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했다. 급히 로봇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한 달 후 쯤, 다행히 수술과 회복이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아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의 김병철 사장

하지만 2022년에 결국 인생에 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푸로발링가 지역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승용차와 기차로 먼 거리를 자주 왕래하다 보니 허리에 통증이 겼다. 나는 그저 무리해서, 나이 때문에 생긴 근육통이려니 했다. 현지 정형외과에서는 수중 걷기를 권했다. 공장에서 20분 떨어진 수영장에서 새벽마다 2개월간 물 속을 걸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나쁘지 않았다.

그 해 10월 서울 방문 기회에 다시 MRI를 촬영하고 진료를 받았을 때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척추 3번에 전립선 암세포가 전이되었다고 했다. 2018년의 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해외 근무로 인해 마무리가 미흡했던 것이다. 의사의 소견은 단호했다.

“이제는 일을 그만두시고 치료에 전념하셔야 합니다.”

곧바로 본사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의논했다. 결국 연말까지 남은 일을 종결하고, 2022년 12월 31일부로 대표이사직에서 퇴임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나이가 78세였다. 1972년도에 미성에 입사했으니, 50년 근무를 딱 채운 해였다. 그동안 ‘그만 두어야지’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그만두지 못했다. 회사가 좋았고, 일이 좋았다. 내 손으로 가꾸고 만들어 온 공장들은 내 회사나 다름없었다. 본사에서도 “김 사장이 일을 잘 못하니, 잘할 때까지 하시오”라는 농담을 건네면서, 정년이라는 개념 없이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긴 시간을 배려해주었다.

결국 내 힘으로 떠나지 못하던 회사를, 질병을 통해 떠나게 된 셈이다.

그렇게  수십년의 일이 손을 떠났다. 2023년부터는 본사가 직접 인도네시아 법인을 이끌어가게 되었다.

 

정리의 시간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이 주어졌다. 수카부미 1, 2공장과 푸로발링가 3공장을 돌며 전 직원과 아쉬운 퇴임식을 가졌다. 그 외에도 공장 밖의 인연을 정리해야 했다. 맡고 있던 ‘재인도네시아 한인 한국 상공회의소’ 부회장직과 ‘한인회’ 자문위원직을 사임하고 간단한 송별 인사를 가졌다.

오랫동안 적을 두었던 자카르타 동부교회 일도 마무리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라 교회를 세우려면 재단이나 교육기관으로 등록해야 한다. 그 법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재단 이사장’ 직을 맡아왔는데, 이를 후임에게 인계하고 성도들과 마지막 송별 예배를 드렸다.

회사 아파트를 반납하고, 개인적으로 소유하던 작은 아파트는 교회 선교관으로 쓰도록 했다. 혹시 은퇴 후에도 인도네시아에 남을까 싶어 개인적으로 마련해 두었던 장소였다. 가구와 집기 등은 정리하여 선교관과 함께 헌물하고, 일부 짐만 한국으로 보냈다.

선교관 헌물을 기증하는 김병철 사장

 

그 무렵, 인도네시아 극동방송의 ‘행복의 초대’라는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신앙생활과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함께 해왔는지에 대한 경험을 소개하는 자리로, ‘나눔’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반반씩 나누는 ‘산술적 나눔’이 아니라, 상대에게 더 주고 나는 덜 갖는 ‘신앙적 나눔’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장은 손해 보는 듯해도, 결국 나눔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낸다는 내용으로, 돌이켜보면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신앙적으로 나누는 자세’를 가지고자 늘 노력했던 것 같다.

 

40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

2023년 3월 12일, 드디어 한국으로 귀국하는 야간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인천공항 출구로 나오자, 아들과 딸이 환영 플랜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 감동이 솟구쳤다.

“광야! 해외생활 40년 마치고, 가나안땅! 한국 귀국을 환영합니다!”

아내는 눈물을 보였지만, 나는 덤덤했다.

‘아,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왔구나.’

지난 40년의 세월이 그 문구 안에 모두 담겨있는 듯했다.

 

자녀들의 귀국 환영 플랜카드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귀국 후 본사에 인사차 들렀을 때, ‘비상근 고문직’을 제안 받았다. 병원 치료에 집중하며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일정 대우를 해주신다는 배려였다. 퇴임시에 많은 도움과 편의를 제공해 주신 이민엽 부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지금은 강남 세브란스 병원을 주 병원으로 정하고, 한 달에 수차례 병원을 오가며 검사와 진료를 받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날에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부지런히 국내외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미국, 한국의 지인들에게 공유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시간, 미성 니나에서 함께 땀 흘렸던 전·현직 모든 임직원과 종업원 여러분께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한다. 또한 우리 미성 제품을 아껴주신 여러 고객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변변치 않은 나의 근무 기록을 이렇게 회고록으로 연재해 주신 BNB 매거진 이병대 사장님과 글을 다듬어주신 편집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10회에 걸쳐 지루할 수 있는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한다.

감사합니다.

꽃이 핀 공장의 정경.


태극기, 인도네시아 국기, 니나 깃발이 함께 휘날리는 미성 인도네시아 공장

 

 

 

PEOPLE By SEYOUN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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