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문화 이해, 손님에게 다가가는 첫걸음
금기 표현 자제하고 그들의 ‘정체성’ 인식해야
최근 ‘문화 감수성’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종 차별 철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나와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문화를 받아들여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성질이나 성향을 지칭하고 있다. 많은 시장이 글로벌화되고 해외에 이주해서 살거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다문화를 이해하는 교육은 점차 더 중요시되고 있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영유아 교육기관인 프리스쿨부터 여러 나라의 문화 체험 행사를 열고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를받아들이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의 설날에 해당하는 ‘차이니스 루나 뉴이어(Chinese Lunar New Year)’를 지내는가 하면 연례행사로 교내 카니발을 열고 각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익히기도 한다. 매년 2월, 흑인 역사의 달에는 역사 속의 흑인들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인종차별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해온 시대별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며 흑인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본래 이민자들이 많아 여러 인종, 민족, 문화가 뒤섞여 있는 ‘멜팅 팟(Melting pot)’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2021년World Population Review의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미국 인구의 다수는 백인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인구 중 백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어선다. 2022년 발표된 센서스국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미국 흑인 인구는 현재 총4,958만 명으로 2020년보다 0.7% 증가해 전국의 14.9%를 차지했다.
뷰티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흑인 고객들과 업체들을 만날 기회가 많기 때문에 흑인 인구 비중을 실제보다 높게 생각하고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전히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분류될 만큼 그 숫자가 많지 않다. 그래서 흑인들은‘단합’한다. 똘똘 뭉쳐야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한 억울한 일에 함께 분노하고 인종 차별적인발언이나 행동에 더 크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달 BNB 매거진은 구글 리뷰를 바탕으로 소매점의 개선점을 돌아보는 기사(2022년 8월호 커버스토리 2 “좋은 가게, 나쁜가게”)를 소개했다. 불평을 담은 리뷰의 대부분은 “나를 도둑으로 보는 것 같다”는 직원 혹은 사장의 의심 어린 눈초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이 휩쓸고 간 자리,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인권 증진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서로의 연대를 위해 ‘흑인 소유(black owned)’ 가게를 찾으며 더 큰 힘을 갖기 위한 움직임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 뷰티업계 종사자들이라면 반드시 ‘흑인 문화 감수성’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태도가 관계를 가깝거나 멀어지게 하는지,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할 수 있는지 인지해야 기존손님들의 발걸음을 멀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흑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의 ‘키워드’를 소개한다.
Black 과 African American
현재 미국에서 흑인을 지칭하는 용어는 블랙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두 가지다. 흑인을 낮춰 부르는 ‘니그로’라는 표현은 2013년센서스국이 모든 설문지에서 표현을 삭제하면서 완전히 쓰이지 않고 있다. 1900년대부터 사용된 이 말은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쓰여왔지만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이 불면서 철폐 움직임이 불었다. 이후 흑인을 일컫는 말은 Black과 African American으로 쓰여왔다. 일부 사람들은 블랙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실제로 2010년대 초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블랙’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선호하는 사람들보다 약 7% 가량 더 많았다.
휴스턴에서 회계사로 근무하고 있는 숀 스미스는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시시피와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부모 사이에서태어난 자신에게 그 누구도 아프리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그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려 한 적이 없다며 피부색이 어둡다는이유로 아프리카계로 불리는 것보다는 블랙을 선호한다고 했다. 마이애미 출신 기업가 지브레 조지는 2012년 처음 SNS를 통해 “Don’t call me African American”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는 “우리는 아프리카 유산을 존중하지만 그 용어는 우리를 대표할 수 없다”며 “우리는 몇 세대에 걸쳐 변화했고 젊은 세대의 흑인들에게 이 표현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가도나 레오나드 콩거는 “나를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부르지 말아달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흑인 인구 유입이 가장 많은 곳은?
흑인 인구 수가 가장 많은 주에 관해서는 커버 스토리 1 ‘흑인 삶 변화와 뷰티서플라이 생존법’에서 살펴보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Scranton-Wilkes-Barre, Pennsylvania의 흑인 인구가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4만 3,241명(7.1%) 늘었고 아이다호역시 5.7% 증가했다는 것이다. 스크랜턴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6번째 큰 도시로 철도산업으로 한 때 번영했지만 현재는 제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아이다호는 인종 다양성 비중이 가장 낮은 곳 중 하나였지만 2010년부터 점진적으로 여러 인종의 유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2010년과 2020년 10년 동안 흑인 인구는 66.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매년 2월은 흑인 역사의 달이다. 역사학자인 카터 우드슨이 흑인들의 공헌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월 둘째 주를 흑인 역사의 주로 지정한 것이 시작이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 당시 흑인 역사의 달이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노예 해방 이후에도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했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나타났고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이루며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좀 더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나타나는 인종차별, 사회의 고정관념 등을 철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때문에 2월이 되면 흑인들은 그들의 인권, 정의 등에 대해 모든 미국인들이 한 번쯤 돌아봐 주기를 원한다. 타깃, 아베크롬비 등 미국의 많은 소매점과 브랜드들이 2월이 되면 각종 캠페인과 기부, 흑인 디자이너와의 협업, 흑인 소유 비즈니스 제품 소개 등으로 흑인 손님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타깃(Target)’은 흑인 역사의 달에 액세서리부터 문구류, 뷰티용품, 책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HBCU 디자인 챌린지를 통해 디자이너를 선정하고 그들에게 타깃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애플은 흑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리기 위해 디자인 Black Unity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는 흑인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 및 연합에 소속된 애플 일원들이 ‘인종 차별 없는 정의’를 위한 의지를 담아 디자인했다. 결집과 행동을 요구하는 역사적, 동시대의 사회적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은 Black Unity 스포츠 밴드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잠금핀 안쪽에 “Truth, Power, Solidarity(진실, 힘, 연대)”라고 레이저로 새겨져 있다. 또한 범아프리카 국기 색상을 활용했다. 이 깃발은 그들이 해방을 위해 흘린 피를 상징하는 빨강, 그들의 존재를 긍정하는 검정, 아프리카의 풍성한 천연자원을 뜻하는 초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1년부터 국가 공휴일 지정, 준틴스 데이
준틴스데이(Junteenth, 6월을 뜻하는 June과 19일을 뜻하는 Nineteenth의 합성어)는 지난해 1986년 마틴 루터 킹 데이(1월 셋째주 월요일)에 이어 35년 만에 새롭게 미국의 연방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에서 노예 해방을 선언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공식 지정전에도 노예 해방일(Emancipation Day), 자유의 날(Freedom Day), 흑인 독립일(Black Independence Day) 등으로 불리며 여러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했었다. 그러다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전국적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지면서 바이든 정부에서 준틴스데이를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게 됐다.
이날은 본래 흑인들의 자유와 인종 평등에 대해 가치를 되새기는 날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일부 기업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이해하지 않고 흑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여러 마케팅에 준틴스데이를 사용하다가 논란을 일으켰다. 이케아(Ikea)가 준틴스 특별메뉴라며 수박과 닭튀김을 팔았는데 이 음식이 인종차별을 불러 일으킨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 수박의 경우 남부에서 흑인노예들에게 더운 날 지급되던 음식인데 그나마 먹기 힘든 폐급 수박을 먹게 했었고 과거 수박 장사를 많이 하던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조롱당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치킨 역시 흑인 노예들이 많이 먹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그들에게 치킨+수박의 조합이 인종차별로 느껴진 이유는 이 때문일 것으로 해석된다.
금기시되는 표현들
앞서 언급한 수박과 치킨처럼 흑인들과의 소통과 만남에서 금기시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지금은 쓰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흑인을 지칭하는 “Negro, Nigger 등의 단어다. 지난 2018년 1월 셋째 주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탄생을 기리는 날에, 앨라배마 대학교 학생들이 “해피 내셔널 니그로 데이”라는 영상을 올리며 흑인들의 엄청난 분노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명연설로 많은 흑인들의 마음을 울린 마틴 루터 킹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흑인뿐 아니라 미국에서 성인으로 추대되는 인물이다.
세계적인 가수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보이그룹 ‘BTS’는 한국의 “니가”라는 표현이 흑인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생각에 “니가 좋아하던 나로 변한 내가”라는 가사를 “결국 좋아하던 나로 변한 사람”으로 수정하기도 했으며 오클라호마 대학의두 백인 학생이 버스 안에서 동아리 회원들을 부추겨 흑인을 비하하는 N-word를 사용해 학교 측으로 퇴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로는 Ann(백인 여자처럼 행세하는 흑인 여자를 비하하는 말), Oreo(흑인인데 백인을 동경해 백인을 추종하거나 백인처럼 행세하는 사람 혹은 백인+흑인 혼혈을 비하하는 은어) 등이 있다.
올가미 밧줄 혹은 이를 연상시키는 문양도 반드시 피해야 할 것 중 하나다. 올해 스탠포드대 기숙사 부근에서 흑인 비하를 상징하는 올가미 밧줄이 발견돼 논란이 있었다. 2년 전에도 숨진 흑인 남성의 시신과 올가미 형태의 밧줄이 캘리포니아주에서 발견되면서 FBI가 증오범죄를 염두에 두고 수사에 나선 바 있다. 올가미 밧줄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흑인들이 사법절차에 따르지않고 교수형을 당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절대 금기시되는 것. 지난해 아마존 창고 건축 현장에서 올가미가 발견돼 공사장을 전면폐쇄하기도 했다. 2020년 나스카 대회에 유일한 흑인 드라이버 버바 월래스의 차고 구석에서 올가미가 발견됐고 이에 그는 “용서할 수 없는 인종 차별 행위”라고 분노했다.
2년 전 폭스바겐은 광고 영상에서 흑인 남성이 차량에 타려고 하자 백인이 등장해 이를 가로막는 장면을 내보내 “백인이 흑인을조롱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폭스바겐 측은 “인종차별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거센 비난이 일자 “대중의 분노를 십분 이해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흑인들은 모두 민주당 지지자일까?
흑인들의 정치 성향을 ‘민주당 지지’로 확정 짓는 경우가 많다. 버락 오바마가 대선에 나선 2008년에 95%의 흑인이 그에게 투표했고 2012년에는 93%가 그를 지지했다. 또한 2020년 대선에서 흑인의 87%가 조 바이든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에 이러한인식은 더욱 굳어졌다. 인권 신장에 가치를 둔 흑인들과 민주당의 성향이 잘 맞는 부분이 있어 실제로 많은 흑인들이 민주당을지지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는 아니라는 점이다.
흑인들이 참정권을 처음 가진 후 1920년대까지만 해도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했다. 당시 공화당은 노예제 폐지를 적극 주장하던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 역시 공화당원이었다.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남부 백인들의 입장을 대변했고공화당은 북부 백인들과 흑인의 입장을 대변했었다. 그러나 배리 골드워터 때부터 이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보수 성향의 흑인들도 많다. 콜린 파월, 칸예 웨스트 등이 그 사례다.
이해 없는 모방, 문화 전유 논란 일으켜
어느 한 문화 집단이 다른 문화 집단의 전통문화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문화 전유’라고 한다. 어떤 문화의 발생 배경이나 정체성에 대한 이해나 논의 없이 단순히 이를 차용했을 때 반감을 일으키는 현상을 뜻한다. 저스틴 비버, 아델 등이 드레드 머리를했다가 흑인들에게 비난을 받았고 디자이너 마크제이콥스는 2017년 패션쇼에서 백인 모델들에게 드레드락 헤어스타일을 하게했다가 논란이 되자 사과했다.
‘드레드’는 본래 노예선에서 몇 달간 지내며 엉클어진 흑인들의 머리를 백인들이 끔찍하다(dreadful)고 말한 데서 그 명칭이 유래됐다. 그러다 1960년대 흑인 인권증진 운동이 일어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레게 음악을 상징하는 헤어스타일로자리 잡았다. 이전에 노예제로 인해 억압받던 흑인들의 해방을 상징하는 이 머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것에대해 흑인들은 “존중받지 못했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예뻐서 혹은 멋있어서 따라 한 건데 무슨 문제야?”라고 하기보다는 그 문화가 상징하고 있는 그들의 정체성, 그들에게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의 문화를 차용하는 것에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다. 혹시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스타일이 그들에게 아픈 민족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지는 않을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고 뷰티서플라이를 오래 운영하면서 흑인 직원 혹은 손님과 많은 소통을 했다면 어느 정도 그들의 문화에대해 인지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쩌다 마주친 불쾌한 경험으로 인해 불거진 오해 등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 잡은고정관념이 찰나의 순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고객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무작정 그들의 문화를 추앙하고 따라주기보다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깊은 이해가 우선 바탕이 되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