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게 힘이다, 잇따른 중국산 헤어 수입품 압수와 그 배경
7월 초, 미 한인 뷰티 업계가 한 뉴스에 귀추를 주목했다. 미 세관·국경 보호국(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CBP)이 6월 28일 뉴욕항과 뉴저지의 뉴어크 항에 입항한 약 80만 불 상당의 중국산 헤어 제품에 인도 보류 명령(Withholding Release Orders, WRO)을 내렸다는 뉴스였다.
이 뉴스가 주목을 끈 이유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도 똑같은 사태가 시애틀항에서 일어났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압수 물품 역시 중국산 헤어 제품들이었고 그때도 CPB는 압수품들에 WRO를 적용했다.
CBP는 보도 자료들을 통해 두 사건의 압수 이유를 모두 신장 시에 위치한 헤어 기업들의 인권 유린 때문이라 밝혔다. 5월 보도 자료에서는 “강제 노동에 대한 합리적인 제보(information that reasonably indicates the use of forced labor)”라 말했고, 7월 보도 자료에서는 “수감자와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인권 유린의 가능성(Potential human right abuses of forced child labor and imprisonment)”이라 적시했다.
아무리 인권 탄압 때문이라 해도 특정 물품에 대한 잇따른 압수 조치는 드문 경우이다.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조차 이번 사태가 이례적이라 입을 모은다.
한편, 압수된 제품을 수입한 한 업체는 보도자료를 통해 “압수된 휴먼 헤어 제품의 원료는 중국산이 아니라 인도산”이고 “제조한 회사의 위치도 신장성이 아니라 허난성”이라며, 단지 “제조회사의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 편의상 신장에 위치한 회사의 명의를 빌려 발송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설사 해당 수입업체의 해명이 정상 참작할 수 있는 속사정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신장성에서 발송한 헤어 제품에 대한 두 번의 압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추후 이러한 일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배경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2016년에 새롭게 개정된 미국 관세법 307조
CBP는 WRO을 적용한 법률적 근거를 미국 관세법 제307조 (Federal statute 19 U.S.C. 1307)에 두었다. 이 법률은 아동 노동 및 불합리한 계약 노동 같은 불법적인 과정에 의해 제조된 생산품의 수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약 85년간 거의 바뀌지 않은 채 각종 무역 업계에서 시행돼 온 이 법률이 왜 요즘 자주 언급되는 걸까? 의아함을 해소시켜줄 첫 번째 배경은 2016년에 이루어진 관세법 개정이다.
법률 개정 전 미국 관세법엔 “소비 수요 예외(consumptive demand exception)”란 조항이 있었다. 국내 생산능력을 초과한 제품군일 경우, 비록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물품이라도 수입을 허가하는 특별 예외 조항이다. 아시아 지역의 헤어 제품이나 동남아 지역의 고무,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인권 단체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말에 접어든 2016년 2월 24일 “소비 수요 예외” 조항을 폐지하는 무역 촉진 및 진행법(TFTEA)에 서명했다. 해당 법률은 2016년 3월부터 실질적으로 발효되었다.
수입업자들은 그동안 “관례”로 여겨졌던 암묵적 통용의 법률적 근거가 완전히 사라진 점과 그로 인해 세관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단속할 수 있는 상황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ICIJ의 위구르 수용소 폭로 문건
CBP가 발행한 5월과 7월의 보도 자료에는 똑같은 두 개의 단어가 등장한다. “중국 신장 시”와 “강제 노동”이다. 두 단어는 몇 년 전부터 인권 탄압을 한다는 의심을 받는 중국 신장 시에 위치한 위구르족 수용소를 떠오르게 한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ICIJ)는 2019년 11월 24일,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탄압이 기록된 공산당 기밀문서를 세상에 공개했다. 당시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앞다투어 해당 문건을 각국에 자세히 보도했고, 미국도 그들 중 하나였다.
ICIJ가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는 다량의 CCTV와 필요 이상의 경찰 인력을 신장에 투입해 위구르족과 다른 소수 민족을 지속해서 감시했으며, 감시를 통해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위구르족 수용소에 구금시켰다.
폭로 문건엔 수용소로 보내진 사람들이 매일 중국어 교육을 받고 중국 공산당 선전을 세뇌받는다 설명돼 있고 심지어 일부 구금자들은 고문과 성적 학대도 당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수용소 안에서 직업 훈련이 제공되긴 하지만, 열악한 근로조건 하에 이루어지는 강제 노동에 불과하다고도 쓰여 있다.
파급력 있던 ICIJ의 위구르 수용소 폭로는 그동안 심증만 갖고 있던 국제 여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람들은 의심을 기정사실화 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위구르 수용소는 인권 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됐다.
트럼프의 위구르족 특별법 서명
두 가지 배경만으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다. 왜 지금, 그리고 왜 하필 헤어 회사들에 엄격하냐는 것이다.
개정된 미국 관세법 제307조가 실질적으로 발효된 2016년 3월 이후로, CBP가 WRO을 적용한 경우는 5년간 겨우 16번에 불과하다. 더욱이, 특정 제품군에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맞추기 위해선 최근 트럼프가 서명한 위구르 특별법을 알아봐야 한다.
작년 말 ICIJ에서 폭로한 기밀 문건들을 바탕으로, 미 의회·행정부의 중국 위원회는 2020 위구르 인권정책법안을 준비해 왔다. 각고의 노력 끝에, 5월 14일 미국 상 하원 의회는 이 법안을 최종 통과시킨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다.
2020 위구르 인권정책 법안의 골자는 인권 탄압에 연관된 중국 기업과 공산당 간부들을 경제적으로 제재하고 관련자들의 비자 발급을 중단 시켜 미국과의 교류를 원천 봉쇄한다는 것이다. 최종 승인된 법률안은 위구르 인권탄압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해 의회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 등의 이유를 들어 서명을 미뤄오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결국 6월 17일에 최종 서명했고 법안은 발효됐다. 이로써 미국은 공식적으로 위구르족 수용소에서 행해지고 있는 인권탄압을 반대하는 나라가 되었다.
세 가지 배경을 토대로 한 상황 분석과 결론
위 세 가지 배경을 숙지하고 사태를 바라보면 이제 앞뒤가 맞는다.
세관 압수가 시행된 5월과 6월은 2020 위구르 인권정책 법이 미 정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시기였다. 그리고, 압수된 물품을 제조한 헤어 업체들은 위구르족 수용소가 위치한 신장 시에 기반을 둔 곳들이었다. 즉, 위구르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시기인 5월과 6월 두 달간, 신장 시에 있는 헤어 업체들에게 수정된 세관법이 엄격히 적용되었던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해 보인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일 때마다, 미국 정부는 신장 지역에서 수입한 뷰티 제품들을 인권 유린을 문제삼아 압수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산 뷰티 제품 수입업체는 인권유린 제품을 수입한다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장 지역에 기반을 둔 업체와의 거래에 더욱 더 세심한 주의와 관리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