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즐거움, 안분지족(安分知足) 매장!
휴스턴의 Hair & Beauty
미국 공항의 허브로 불리는 텍사스 댈러스 공항(DFW)에서 남동쪽으로 약 3시간 반을 차를 타고 내려가면 휴스턴이란 또 다른 대도시가 나온다. 여유롭고 한적한 휴스턴이란 도시에서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일하고 있던 Hair & Beauty의 이주호 사장은 매장을 방문한 BNB 매거진을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하필 Mothers day 시즌이라 다른 날보다 더 바쁜 장사 준비를 하고 있던 이 사장은 같은 자리에서 뷰티서플라이를 23년간 운영해온 베테랑이다. 오래된 세월만큼 Hair & Beauty에는 속 깊은 이야기와 다른 소매점에서 듣지 못했던 특별한 운영 철학이 숨어있었다. 그동안 이사장이 겪은 가슴 따뜻한 경험과 20년 넘는 세월 동안 흔들리지 않는 소매점 운영 철학을 지금 들어보자.
헤어 업계 1세대셨던 우리 아버지
이주호 사장에게 헤어 업계는 낯설지 않은 분야였다. 이주호 사장이 고등학생 시절일 때부터 이 사장의 아버지가 뷰티서플라이 소매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아버지가 헤어 업계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형제들이 많았던 점이 한몫했을 것이라 말했다.
“저는 누나가 두 명 있고 형이 한 명 있어서 형제가 비교적 많은 편이에요. 저희가 총 4형제인데, 거진 다 연년생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 저희 큰 누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까.. 저희 네 명이 대학교를 1~2년 차이로 거의 같은 시기에 들어갔죠. 정확히 아버님과 이야기는 나누어 보지 못했지만, 아마 저희 대학 등록금 때문에 비지니스를 시작했을 거에요. 제 큰아이가 올해 18살 됐는데, 그때 아버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웃음) 평범한 회사에서 받았던 월급으로는 한 번에 모든 걸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렸을 적, 아버님의 가게에서 어깨너머로 보아 왔던 헤어 업계는 훗날 이주호 사장이 소매점을 운영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헤어 업계를 전혀 모르시던 아버님의 가게는 처음엔 뷰티서플라이 소매점이 아니었다.
“아버님이 원래는 작은 Gift 샵으로 시작하셨어요. 왜 그냥 생필품이나 기념품 파는 가게 있잖아요. 가게 시작하시고 1,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아버님 지인분께서 헤어용품을 팔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대요. 이 업계를 모르셨던 아버님은 ‘이게 뭐 팔리겠어?’ 하는 심정으로 시험 삼아 매장 내에 작은 공간을 할애해 판매했는데, 이게 팔리더래요. 아주 잘 팔리더래요. 이 시장을 이때 접하게 됐고 점점 헤어 물품을 늘려가다 보니 gift 샵이 지금의 뷰티서플라이 소매점이 됐어요. 당시만 해도 이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이 많이 없았어요. 거의 헤어 업계 1세대이신 거죠.”
스스로 개척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 큰 조카를 못 알아본 덕분에 휴스턴으로 돌아오다
아버지가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했기에 헤어 업계에 비교적 친숙했던 이 사장이었지만, 그는 다른 길을 걸으며 인생을 개척 하려 했다. 이 사장은 휴스턴에서 차로 약 8시간 거리에 있는 Lubbock이란 도시에 위치한 Texas Tech University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며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 찾아냈고, 대학교 졸업 후엔 고등학교 동창의 권유로 시애틀로 날아가 그곳에서 첫 직장을 구했다.
“처음에는 시애틀 공항에 위치한 한 렌터카 회사에 취직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어요. 아 그런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조직 생활을 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상사가 제게 요구하는 건 많았던 반면, 제가 스스로 선택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어요. 직장생활에 무료함을 느낄 때쯤, 휴가를 받아 휴스턴 본가로 내려왔어요.”
이 사장은 오랜 세월 못 보았던 큰 조카가 못 알아볼 정도로 자란 것에 충격을 받았고, 향수병이 뭔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한다.
“큰 조카를 제가 못 알아봤어요. 충격이었죠. ‘아, 가족도 못 알아 볼만큼 내가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향수병이란 것을 처음 앓았어요. 조카를 못 알아보고 고향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마침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있었기에 휴스턴으로 돌아오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죠.”
매형이 준 천금 같은 기회, 넘치는 자신감으로 붙잡다
휴스턴에 돌아온 그는 곧바로 Hair & Beauty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헤어 업계에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 그였지만, 실무 경험은 전무했다. 그런 그를 믿어준 게 그의 매형이다. 그는 매형의 두 번째 매장인 지금의 가게에서 신임을 받으며 일하게 됐다.
“아 매형이 저에겐 정말 큰 은인이세요. 제가 아무리 가족이라도 저를 믿고 가게를 맡긴다는 게 참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부터 가게 운영권을 저에게 넘겨주셨어요. 돈을 떠나서 제가 일하면서 느꼈던 만족감이 매우 컸던 것 같아요. 상사에게 강요받은 일만 했던 렌터카 회사 시절과는 달리, 가게 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제가 선택한 것들을 토대로 만들어져 가는 제 가게가 만족스러웠던 거죠.”
보통 경험이 없는 분야에 결정권을 갖고 가게를 운영을 해나간다는 것이 두렵지 않았냐는 BNB의 질문에 이 사장은 고개를 저으며 당시 본인은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자신감이 매형이 준 기회를 바로 잡을 수 있던 원동력이라고 그는 전한다.
“이게 저의 장점이자 단점인데요, 저는 항상 자신감이 있어요. 예를 들어, 당장 제가 타고 가는 비행기의 기장이 잘못돼서 비행기 운전대를 저한테 준다고 해도, 저는 운전대를 잡고 공항에 착륙시킬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어요. 예가 좀 극단적이었는데 (웃음) 여하튼, 그 정도예요. 우리 집사람은 이걸로 저를 가끔 놀리기도 하는데, 세상에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냐라는 생각을 해요. 물론, 이 분야를 계속 공부하며 노력했지만, 처음 운영권을 넘겨 받았을 때 잘 운영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고,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밥그릇을 지켜주자’란 장사 철학, 매장의 절반을 가발로 채우다.
Hair & Beauty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받았던 인상은 실내가 넓다는 점과 가발 진열대의 비율이 타 소매점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매장의 거의 절반가량이 가발 진열대로 꽉 차 있었다. 요즘같이 잡화, 케미컬, 브레이딩을 골고루 파는 뷰티서플라이 판매 트렌드에서 조금 동떨어진 것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만의 운영 철학을 들려주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믿는 신념인데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은 모두 자기 밥그릇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가 조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저희 매장이 헤어를 파는 가게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발을 중점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 생각해요. 잡화나 케미컬 판매도 물론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해요. 그럼에도, 저는 헤어에 집중해서 장사를 하는 게 맞다 생각해요. 이 부분은 욕심 없이 매장을 운영하시던 매형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 제 생각이기도 해요. 처음 제가 운영권을 넘겨받았을 때는 지금 만큼 가발이 많지 않았지만, 제가 점차 가발의 비중을 늘리다 보니 어느새 절반 정도가 가발로 차게 됐어요.”
물론, 그도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이기에, 가발을 중점으로 파는 이유에는 돈을 벌기 위한 장사 비법도 숨어있었다.
“가발은 특히 손님들의 충성도가 높은 품목이에요. 헤어의 질감과 색, 착용감, 그리고 본인의 머리에 썼을 때 어떻게 연출되는지 등등.. 손님들이 가장 까다롭게 보는 게 가발이거든요. 그래서 특정 가발에 한 번 만족한 손님은 계속 똑같은 물품을 찾고요, 반대로 불만족한 손님은 그 품목을 쳐다도 안 보죠. 가발을 중점적으로 판다고 해서 뭐 뚜렷이 매출이 올라가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단골 손님이 많이 생기는 효과가 있어요. 가발을 최대한 많이 진열해 놓았기 때문에 특정 가발을 찾으러 저희 가게에 오는 손님이 많아요.”
가발 진열뿐 아니라 가게 곳곳에는 이 사장의 철학이 묻어난 흔적들이 보였다. 그는 그것을 본인의 고집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섹션들을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닌데, 상대적으로 가발과 헤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요. 제가 아예 취급하지 않는 잡화 물건들도 있고요. 제 고집이라면 고집이죠. (웃음) 제가 또 하나 고집 피우는 게 있는데, 저희 집은 POS 기를 안 써요. 직접 다 손으로 하고, 제가 머릿속으로 외우면서 스탁 하는 것도 많고요. 제가 편한 것도 있고, 의도한 것도 있어요. 오랜 경험으로 기술적인 것들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굳이 시도를 안 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인생 철학,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다
이 사장은 가게가 처음 만들어질 때를 회상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전한다. 운영 철학에서 엿보았듯이, 그의 인생 철학도 안분지족이다. 지금 행복하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처음 비즈니스를 접했을 때, 매형이 저에게 해준 말이 ‘사람은 도움 없이는 절대 못산다’ 였어요. 암만 잘하는 사람이어도 다 도움받고 사는 거라고 하셨어요. 저희 가게가 1997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에 매형 지인분들이 문을 닫고라도 달려와서 매장 꾸미는 일을 도와줬대요. 같이 가판대를 만들고 바닥에 못을 박으면서 일해주셨죠. 휴스턴 생활을 하며 이곳저곳에서 만나는 분들이 저희 가게의 ‘무엇, 무엇을 만들어 줬다’ 라고 말해 주실 때마다, ‘우리 소매점이 모두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가게였지’ 하며 다시금 되뇌게 돼요. 요즘 분위기와 그때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죠? (웃음) 당시에는 그랬어요. 모두가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살아가곤 했죠.”
그는 점점 경쟁이 심해지고, 인색해지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요즘 참 그렇잖아요 다들.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큰 가게던, 작은 가게던 각자 잘하는 게 분명히 있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으쌰으쌰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이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 매우 아쉽죠. 저도 만약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줄 생각이 있어요. 아무리 큰 가게라도 어쨌든 다 동네 장사거든요. 맥도날드나 다른 프랜차이즈같이 일률적으로 똑같이 장사할 순 없는 게 이 업계에요.”
그는 현재의 행복에 만족하기 때문에, 가게를 확장하거나 분점을 낼 생각이 없다.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매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마음만 먹었으면 가게를 더 늘릴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안했던 이유가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는 점이 컸어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하나? 지금 내가 원하는 게 여기 다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만들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요.”
“잘 맞는 직원들과 같이 일하는 건, 잘 맞는 사람과 연애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Hair & Beauty엔 오래된 직원이 많다. 매장의 가발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Tanya Jones 씨는 어느새 올해 20년째 일하고 있고, 스탁과 기타 매장 전반의 일을 모두 돕고 있는 Mike Govea 씨는 15년째 일하고 있다. 이주호 사장은 오랜 직원들과 늘 웃으며 일할 수 있는 비결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특별한 건 없어요. 인터뷰 보고 수습 기간 주고, 뭐 남들과 똑같이 직원을 구해요. 일하면서 느끼는 케미가 다 있는 것 같아요. 데이팅이랑 똑같아요, 왜 연애를 하더라도 잘 안 맞는 사람 전화는 피하게 되잖아요? (웃음) 제 생각에 일도 연애와 같이 잘 맞는 사람이 있고, 잘 안 맞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그 안에서 직원들과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는 거죠. 저렇게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건 저한테도 축복이에요.”
“사장님이라기보다는 그냥 가족 같아요. 일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제 개인적인 모든 일들을 도와주세요. 영어를 계속해서 알려주기도 하고요. 제가 스패인어가 더 편한 사람인데, 사장님이 영어를 친절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영어가 꽤 많이 늘었어요. 이곳에서 일하는 게 너무 편하고 만족스러워요.”
“20년 전, 가게에 손님으로 왔다가 Hair & Beauty의 매력에 빠져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네요. (웃음) 저도 이곳이 또 다른 집이자 직원들과 사장님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애가 네 명이 있는데 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낳고 키웠어요. 제 삶의 일부를 여기서 다 보낸 거죠. 사장님도 너무 좋으세요. 친절하시고, 저희를 다 평등하게 대해줘요. 이보다 더 편안한 직장은 없을 것 같아요.”
20년 경력의 그녀는 요즘 잘나가는 품목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아 요즘, 특히 코로나 이후로 재택근무가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손님들이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더 화려한 색과 독특한 스타일의 가발, 헤어 제품들을 계속해서 찾고 계세요. 저도 그러고 있고요. (웃음) 손님들이 제 머리를 보고 영감을 얻어 가발을 찾기도 하고, 제가 착용해본 것들을 추천해주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