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에 상장이 되는 그날까지…

나스닥에 상장이 되는 그날까지

김은호(47세) 미주조지아뷰티서플라이협회(UGBSA) 회장 인터뷰

김은호 회장은 1974년생으로 부경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 대학 졸업 직후 27세에 도미(渡美)해서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안경회사, 옷도매상 등에서 일했다. 2003년에 조지아로 이주해서 약 3년 동안 뷰티서플라이 직원과 매니저를 거쳤다. 그곳에서 부인 김미경씨(현 애틀랜타 국악원장)를 만나 결혼을 하고 슬하에 1녀를 두었다. 결혼 직후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뷰티서플라이 1호점을 오픈했다.
작년 2020년 7월에는 동업자 2인과 함께 대형 뷰티서플라이 업소인 ‘Beauty Now’를 창업했고, 1,2호점에 이어 곧 3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 독자 경영하는 매장 3개(Miky’s Beauty), 공동 경영하는 매장 2개 등 총 5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곧 개점할 3호점까지 합하면 총 6개의 매장을 운영하게 된다. 2019년UGBGA회장으로 취임 후 2년 동안 성공적으로 협회장직 임무를 수행했으며, 곧 이임을 앞두고 있다. UGBSA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인생과 경영철학, 협회 활동 소회 등을 들어 보았다.

 

묻지마 이민, 고달픈 미국 생활

김회장은 대학 졸업 후, 다소 무모하고 충동적으로 막연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미국에 살던 친구가 안경사업을 시작하려는데 같이하지 않겠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어 온 걸,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덥석 결정하고 바로 이민가방을 쌌습니다. 부모님께는 여행 갔다 오겠다고 하고, 그 길로 마이애미로 왔어요. 그리고 고단한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묻지마 이민’이었죠.” 막상 미국에 와보니 생각만큼 삶이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고분자공학 전공으로 H1 비자 신분을 유지하자니, 고연봉 기준 때문에 높게 책정된 세금을 납부하느라 남는 돈이 없는 고달픈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힘든 마이애미의 삶을 정리하고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새로운 꿈을 꾸며 2003년 애틀랜타로 이주했다.

 

1호점을 내고 매일 14시간씩 강행군

애틀랜타 이주 후 뷰티서플라이에 취업했다. 당시 10여 개의 뷰티서플라이 매장을 운영하던 사업체에서 열심히 일하며 1년 만에 매니저로 승진하고, 그 사장님에게 가게 운영 노하우를 배웠다. “저는 이 비즈니스의 매력에 빠져서 얼마 후 나만의 가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아침 7시에 가게를 열고 저녁 9시에 닫을 때까지 하루 14시간씩 열심히 일한 결과, 땀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역시 기회의 땅 미국이었습니다. 그 당시 모타운에서 만든 레이스 가발이 유행하기 시작해서 들여놓기 무섭게 팔려 나갔습니다.”

 

이런.. 바보 아냐???

1호점이 자리를 잡을 즈음 김회장은 중대 결심을 하게 된다. 같은 몰 안에 가게를 하나 더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두가 말렸습니다. 뷰티서플라이를 바로 옆에 두 개 여는 바보가 어디 있냐고…” 그러나 김회장은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둔다. 새로운 가게를 가발 전문으로 특화시킨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오픈하자마자 대박이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타주에서도 전화주문이 들어오고…어떤 손님은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떼다가 팔기도 했습니다. 다른 주에 사는 친척들에게 몇십 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편집자 주: 현재는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1호점을 제외하고 2호점과 3호점은 매각하거나 닫았다)

 

백인 동네에 4호점 오픈

그렇게 2호점이 성공을 거둔 뒤 2년이 지나고 김회장은 흑인 손님이 많지 않은 동네에 4호점을 오픈했다. “이것도 어마 무시하게 말립니다. 아직 백인 뷰티로 성공한 한인 가게가 없을 뿐더러 시기상조라는 거죠. 맞는 얘기였습니다. 그때까지 백인 뷰티는 한인이 뚫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견고한 그들만의 연결고리가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리그였던 백인 뷰티의 단단하고 높은 장벽을 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차츰 흑인 손님이 오기 시작하더니, 흑인손님들로 바쁜 가게로 탈바꿈하며 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된다. “잘 보이지 않던 흑인 손님들이 가게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가게가 바빠지기 시작하고 백인 제품이 있던 자리가 흑인 제품들로 하나둘 바뀌어 버리더군요.”

공동경영 사업체 Beauty Now 1, 2호점

 

동업하면 패가망신??? 나스닥 상장이 꿈!

김회장은 최근 뜻에 맞는 동업자 2인을 규합해 연이어 사업체를 오픈하고 매장의 체인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 매트로 애틀랜타 지역에 ‘Beauty Now’라는 간판을 걸고 2개 매장을 오픈해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면적이 각각 10,000sf, 27,000sf 매장이다. 지금은 3호점 개점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건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매일 전화로 말리시던 겁니다. 동업은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 부모자식간이나 형제간도 동업하면 패가망신이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김회장은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라는 점을 제외하고 매우 다른 성향을 가진 2인의 동업자와 함께 하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점이 너무 좋다고 한다. “저와 함께 하시는 분들은 모두 이 업계에서 20년씩 경험이 많으신 사장님들입니다. 하지만 회사 운영방식과 성향이 너무나 다릅니다. 저는 이 다름이 제일 맘에 듭니다. 각자가 헤어, 잡화, 케미컬 품목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배울 점이 많습니다.” 동업을 시작한 지 1년여 남짓이라 아직 성공이라고 명명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비교적 성공적으로 빠르게 사업체를 안착시키고 있다. “방향은 체인화. 그리고 저의 최종 목표는 나스닥 상장하는 회사로 키우는 것. 너무 허황된 꿈일지 모르지만 저는 진지합니다.”

 

“사양하겠습니다. 가보지 않은 자의 조언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데 있다. 김회장이 걸어온 길도 예외는 아니다. 김회장은 최근 한국의 카톨릭 관동대 학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도전과 성공에 대해 온라인 특강을 한 바 있는데, 아래 내용은 그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나는 며칠 지난 빵을 먹을지라도, 직원분들께는 갓 구운 따끈한 빵을…”

김회장의 가게에는 장기 근속하는 직원들이 많다. 예를 들어 1호점 매니저는 김회장이 뷰티서플라이 직원일 때부터 연을 맺어 지금까지 18년을 같이 일하고 있는 분이다. 김회장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이다. 원래 사람과 관계를 만들기 좋아하는 성품인 김회장은 직원들을 섬세하고 살뜰하게 챙긴다. “직원들이 직장에서 일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3대 요소는 ‘급여, 통근거리, 주인’인데요. 급여와 통근거리는 사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주인이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주인으로서 직원분들을 존중하고 믿어주고 항상 따뜻하게 잘 해드려야 합니다. 회식할 때도 최고 메뉴로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각종 기념일도 꼼꼼히 챙겨드립니다. 가게에 간식거리 부식거리도 잘 비치해 놓습니다. 대형 냉장고 안에 음료수도 열을 맞추어 보기 좋게 진열하기도 합니다. 저는 며칠 지난 빵을 먹더라도 직원분들에게 갓 구운 빵을 대접해드리는 마음으로 모십니다. 회사에서 통근차량을 제공하고 있지만, 본인 차량으로 출근하는 분에게는 교통비를 따로 드립니다. 다른 곳에 이직했다가도 다시 돌아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급식당에서 전 직원 회식

 

도매상 세일즈맨에게 인기가 많은 업소

김회장은 지금의 공급대란 사태에도 가게에 물건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창고에 이미 쌓아 놓은 물건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세일즈맨들이 오더를 요청하면 웬만해서는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세일즈맨들에게 인기가 많은 업소다. 더군다나 평상시 세일즈맨의 개인사도 열심히 챙기고 식사도 같이하며 관계를 돈독히 맺는다. 혹시 세일즈맨이 가게에 와서 물건을 사가는 경우 원가로 제공한다. 역시 물건을 잘 받기 위해서도 우선 사람을 잘 챙겨야 한다. “돈을 벌어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김회장은 천상 장사꾼이다. 간혹 너무 많은 물건을 주문해서 와이프의 불만도 많이 샀다고 한다. “물먹은 물건들도 있지만, 세일을 통해서 다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협회장 이임을 앞둔 소회

“협회장하면서 매일 늦게 귀가하고 가게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너그럽게 이해해준 와이프에게 먼저 고맙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부족한 것이 많은, 젊은 나이의 회장을 이해해주시고 항상 도움을 마다하지 않으신 고문님, 이사님들께도 감사합니다. 이분들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뷰티쇼를 개최해서 협회 곳간을 채워 놓고 후임 집행부에게 넘기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뷰티업계 모두가 대승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타산만 따지지 말고 서로 도우면서 계속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뷰티션 인터뷰 BY Samuel Beom
BNB 매거진 2021년 11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