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청년, 그의 열정이 담긴 가게
멤피스 Pro Beauty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였던 블루스가 탄생한 곳, 1960년대에는 흑인 민권 운동의 중심지였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한 곳으로 알려진 테네시주 멤피스 지역을 찾았다. 흑인들에게는 영혼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곳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도시 인구의63%가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인 인구가 많지 않고 다소 척박해 보이는 환경을 가진 이곳에서도 한인 이민자들은 뿌리를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중 한 사람인 최재봉 사장은 유학생으로 처음 멤피스와 인연을 맺었고 뷰티 소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한 지 7년 만에 나만의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을 이뤘다.
멤피스에서 소매점 두 곳을 운영 중인 최재봉 사장과 그의 가게 1호점에서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뷰티 업계에 종사해 온 스토리가 궁금해 만난 자리, 어딘가 개구져 보이는 청년의 이미지를 가진 그는 인터뷰 내내 화끈한 입담과 솔직함으로 매 질문에 시원한 답변을 남겼다. 때로는 엉뚱하지만, 진지함 속에 담긴 위트로 마주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킬줄 아는 최재봉 사장, 스스로를 “아주 골 때리는 캐릭터”라고 소개하는 그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소매점을 소개한다.
프로뷰티의 시작
최 사장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전역하고 먼저 이민을 떠난 부모님이랑 여동생을 따라 2007년 뒤늦게 미국에 왔다. 멤피스 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오자마자 멤피스의 한 대형 소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일을 배우면서 뷰티서플라이 업계가 전망 있는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처음 일했던 소매점 사장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제게 너무가족같이 잘해주시고 많이 도와주시는 분이에요. 그곳에서 처음 뷰티 일을 배우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죠.”
그러다 멤피스로 출장을 왔던 한 도매업체 관계자로부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샌프란시스코 상주 조건으로 멤피스를 떠나 잡화 부분 세일즈를 했다. “북가주 1등도 해봤어요!”라며 자랑스럽게 웃는 최 사장에게 “혹시 힘든 점은 없었나요?”라고 묻자그는 “일 잘하면 안 힘들어요. 저는 혜택만 봤던 것 같은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참 재밌게 잘 했고, 회사가 많은 것들을 해줬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세일즈로 일을 하다 2012년, 원래 일하던 소매점에서 도와달라는 호출을 받고 다시 멤피스로 돌아왔다. 소매점과 도매업체를오가며 쌓아 올린 경험으로 2014년 첫 ‘내 가게’를 열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리테일부터 임포트까지 돈 안 내고 잘 배웠다고요. 그게 지금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자산이 되었으니까요. 가르쳐주시고 지지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죠.”
든든한 지원군, 아내
‘프로뷰티’라고 소매점 이름을 지은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친구가 운영하던 세탁소 프로 클리너의 이름이 괜찮아 이를 그대로사용했지만, 운영을 하면서는 ‘프로페셔널’의 의미를 담게 됐다. 물론, 누구나 기억하기 쉬운 심플한 이름이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2014년 첫 지점을 오픈한 후 8천 sqft인 1호점보다 1/3 정도 더 큰 1만2천 sqft의 2호점을 2018년에 계약했다.팬데믹 때문에 인스펙션만 1년이 꼬박 걸렸다. 작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최 사장은 2호점을 담당하고 1호점은 부인이 맡아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1호점은 그야말로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비결을 묻자, “와이프가 워낙 깔끔한 성격이에요”라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길이와 스타일을 구분해 깔끔하게 진열된 가발 매대, 크지 않은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위해 바닥까지 활용한 센스, 군대 내무반을연상시킬 만큼 각 잡혀 줄지어 서있는 케미컬 제품들까지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같이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에 최사장의부인은 손사래를 쳤다. “제가 한 것도 없는데요.”라며 묵묵히 매장 곳곳을 살폈다. 매장 관리를 완벽하게 해주고 있는 부인 덕분인지 최재봉 사장은 홍보와 영업에 더욱 신경을 쓸 수 있었다.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영업 비밀이란다. 5,000명 가까운 회원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만 공개했다. 이들에게는 세일 정보 등도 제공된다.
도난 방지를 위해서는 소매점 감시를 강화하기보다 직원들이 손님을 밀착마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귀찮게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동태를 잘 살피고 필요한 정보와 물품 등을 찾아 주는 것, 그리고 늘 귀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주도록 하는 것이 전략이다. 물건을 힘들게 들고 있는 손님에게 “바구니 드릴까요?”라고 먼저 손 내미는 것이, 프로뷰티가 빈번히 일어날 수 있는 도난을 줄이는 방법이다.
- 바닥을 활용한 디스플레이
8천 sqft의 크지 않은 매장, 그럼에도 부족함 없이 다양한 물건을 구비해두기 위해 프로뷰티는 바닥 공간을 적극 활용했다. 지나가는 손님들의 발걸음에 물건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진열장을 꾸리거나 상자에 담았다. 판매 헤어의 착용 느낌을 알 수 있는 마네킹도 바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교체 주기 빠른 의류 마네킹
프로뷰티는 계절과 유행에 맞는 제품, 인기 의류 상품들을 자주 교체한다. 의류 매대 앞뿐 아니라 매장 입구와 곳곳에 마네킹을설치해 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했다. 최 사장은 “아내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라며 직원들과 상의해 가장 잘나가는 제품들을 엄선하고 있다.
- 내무반 저리 가라, 각 잡힌 케미컬 제품들
흔히 말해 칼각 잡힌 케미컬들이 줄지어 서있는 매대, 용도와 크기, 색상까지 고려했다. 크지 않은 매장에 수많은 물건들이 있어도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였다. 직원들이 자주 매장을 돌며 손님들이 지나간 자리를 정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길이와 스타일별로 나눈 헤어 매대
프로뷰티 1호점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헤어 제품들, 입구에서 오른쪽 부분을 가득 메우고 있다. 길이와 스타일별로 나눠 깔끔하게 정리했고 높은 곳까지 헤어 마네킹을 진열했다. 팬데믹전에는 매장 내에 작은 살롱도 운영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인력 관리’
인터뷰 도중 최 사장에게 이것저것 물으러 오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친절한 답변과 함께, “Thank you, sweetie.”라고웃어주는 그에게 “직원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하고 물었다. “매니저 ‘리샤’는 처음부터 같이 일한 일원이에요. 오늘은 일이 있어서 매장에 나오지 못했지만 정말 ‘군기반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친구죠. 웬만한 건 다 알아서 결정하고 매장, 직원관리도 너무 철저하게 해줘서 걱정이 없어요”. 프로뷰티는 주기적으로 회식도 한다. 깔끔한 매장의 일등공신인 최 사장의 부인은직원들의 생일과 경조사를 잊지 않고 챙기는 편이다. 매번 진심을 담은 손편지를 전달하는 것도 직원들이 애사심을 가지고 일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작년, 재작년에 인력난으로 고생일 때도 프로뷰티는 굳건했다. “소매점이 잘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다 직원들 덕분이라 생각해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하죠. 이 친구들 땜에 먹고 사는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에요”
가게를 지켜준 흑인 손님들
“게토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한 꼬마친구한테 신발을 선물한 적이 있어요. 그 친구가 그 일을 기억해 주고 찾아왔던 일이있었죠.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최 사장은 “인간적으로 대해주면이 친구들도 알아요. 그렇게 믿어요”라고 했다. 가끔 가게에 들어와 물건을 들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보면 절망적일 때도 많지만그 친구들에게 “다치니까 뛰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그 작은 정성을 언젠가는 그들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최 사장은 가지고있었다. 그래서일까? 조지 플루이드 사망으로 흑인 인권 증진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을 때 동네 흑인들은 발 벗고 나서서 최사장의 가게를 밤새 지켰다. 다운타운에서부터 올라온 시위대가 프로뷰티 바로 옆 가게를 부술 때까지도 최 사장의 가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최 사장은 “아 그동안 착하게 산 보람이 있구나” 하고 느꼈다.
멤피스 지역에선 어떤 물건들이 잘 팔리나요?
요즘은 특별히 잘 팔리는 물건을 특정하기가 어렵지만 프로뷰티에서 매출을 올리고 있는 효자상품들은 브레이딩 헤어, 옷, 잡화등이다. 최 사장은 “흑인 손님들의 미의 기준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톤 자체도 많이 밝아지고 내추럴한 제품들을찾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요즘 트렌드를 알아보기 위해 자주 마트와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 행인들의 스타일링을살핀다고. 최 사장은 “이제 브레이딩 헤어는 단순히 여름에만 잘 팔리는 상품이 아니라 겨울까지 계속 꾸준히 나가는 인기 아이템”이라며 “긴 머리들이 많이 나가지 않고 색이 밝은 헤어 제품들이 잘나가는 것도 하나의 추세인 것 같다”고 했다. 많은 케미컬을 구비해 놓은 것도 프로뷰티의 장점. 최 사장은 패밀리 달러 스토어, 월그린스 등에서도 케미컬이 많이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뷰티 소매점의 케미컬이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충성도가 높은 제품군들도 많기 때문이다. 가까운 뷰티션들에게도 자주 자문을 구하는 편이다.
뷰티업계 전망? 밝지만은 않을 것
앞으로의 뷰티업계 전망에 대해서 최재봉 사장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왔을 때부터 뷰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이어온 것은 임포터부터 리테일러까지 전 라인을 한국인들이 쥐고 있었다는 강점이 있었기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요즘은 타민족과의 경쟁도 있고 그런 걸 보면 한인들이 주로 하던 그로서리, 개스 스테이션과 같은 전철을밟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어요. 그렇지만 누구보다 뷰티업계가 계속 자리를 지키길 바라고 있어요. 대가 끊기지 않고, 막대한자금력에도 뒤치지 않았으면 하죠.”
앞으로의 꿈
“어느 지역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멤피스는 작은 지역이에요. 좀 더 화합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남의 나라에 와서 다같이 고생하는 거잖아요. 나만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다 같이 생존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어려운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