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고?”

 

10년 전 즈음 한국에서 회자된 ‘미생’이라는 오피스 드라마가 있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란 말은 거기에 나온 유명한 대사이다. 뷰티 업계에서도 세일즈 전선에서 뛰다가 남다른 포부를 안고 뷰티서플라이 오너로 전향한 분들이 꽤 있다. 그러나 막상 자기 사업에 뛰어들어보면 그 세계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 기사에서는 세일즈맨 출신의 뷰티서플라이 사장님들을 취재하여 예비 창업주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 소개할 분은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약 4,000sqft 규모의 가게를 알차게 운영하고 있는 김선정(Tony Kim) 사장님이다. 동부지역 대형 헤어 업체에서 세일즈맨으로 7년 정도 일하다 이 가게를 인수한 지 3년 가까이 되어간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다가 어떻게 가게를 인수하게 되셨나요?

이전 회사가 급여도 괜찮고 여러모로 베네핏도 좋았는데요. 쌍둥이 딸이 태어나면서 육아 비용이 두 배씩 들어가니까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월급쟁이 급여야 빤하니 장사를 하면 경제적으로 나을 것 같고, 가족에게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했었죠. 그때 즈음해서 제가 댈러스 지역 담당자로 발령이 났는데, 많은 사장님들이 가게를 할 생각이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고 권하시더라고요. 로컬 담당자라 어떤 가게의 매출이 좋은지, 위치가 어떤지 잘 아니까 여기저기 따져보고 지금의 가게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가게를 운영해 보니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지요. 아침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헤어 업계에서만 일을 해봐서, 헤어를 제외한 아이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공부할 것도 많았고요.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지금은 매출도 증가하고 좋은 직원들을 만난 덕에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장사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위험한 순간이 몇 번 있었어요. 총기 사건으로 언론에 나온 적도 있고요. 어떤 여자 손님이 물건을 훔치려다 걸려서 승강이를 하다 몸싸움이 났었죠. 총을 꺼내는 걸 제가 달려들어서 막았는데, 그때 한 발이 발사돼서 정말 위험했어요. 경찰이 오는 10분 동안 손님을 제압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미국에서 뷰티서플라이를 하는 사장님들은 이처럼 위험한 순간들을 한두 번씩은 겪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세일즈맨 중 가게를 운영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최대한 회사를 다니면서 창업 준비를 하라고 하고 싶어요. 회사를 이용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말이에요. 저도 가게를 인수할 때쯤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이전에 계약했던 새 집이 완공되면서 다운페이를 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생겼어요. 회사를 그만두니 대출도 안 나오더라고요. 사흘 안에 큰 금액을 구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 닥쳤는데,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여기서 다시 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장사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고생스러웠지만 자리가 잡혀서 가게도 좀 더 확장했고 매출도 어느 정도 나오고 있어요. 직원들 덕분에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뷰티 업계에서 세일즈를 하는 분들 중 가게를 하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알아보고 좋은 가게를 인수해서 제2의 인생을 사셨으면 합니다.

김선정 사장님이 운영하는 뷰티서플라이 가게

 

 

두 번째 인터뷰이는 동부지역에 본사를 둔 헤어 회사와 케미컬 회사를 다니다가 텍사스에서 작은 뷰티서플라이 가게를 인수한 지 6개월 정도 된 새내기 권종걸 사장님이다.

어떻게 가게를 인수할 생각을 하셨나요?

세일즈맨으로 10년 넘게 일하면서 실적에 대한 압박이나 출장 부담 등도 컸지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어요. 애들이 어려서 한창 손이 많이 갈 때인데 한 달에 2~3주씩 출장을 다니니 아내 혼자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서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같이 상의한 끝에 직장생활을 접고 장사를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다 지금의 가게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가게를 운영해 보니 어떠세요?

우선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데 만족합니다. 애들도 자주 볼 수 있고 아내도 때때로 가게 나와서 일하면서 육아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요. 가게 레이아웃을 바꾸거나 새로운 물품을 구매하고 진열을 다르게 하는 등 이런저런 시도를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제가 생각한 대로 그 물건이 잘 팔리는 걸 보면 또 다른 보람도 느낍니다. 인수한 지 얼마 안 돼서 직장 다닐 때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서 희망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장사하신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래도 특별하거나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최근에 가게에서 도둑을 처음 겪어봐서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세일즈맨이랑 얘기 중이었는데, 손님이 들어와서 가게 안쪽 가발 섹션으로 가더니 한참 후에 그냥 나가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하고 가발 섹션에 가보니 비싼 휴먼 가발들이 사라진 거예요. 약 천 불 어치 도난을 맞았죠. 뷰티서플라이 가게에 도둑이 많다는 걸 말로만 들었지, 제가 직접 당하니까 충격이 컸어요.

앞으로 더 조심하셔야겠네요. 소매점을 하고파 하는 세일즈맨들에게 특별히 당부할 말이 있으신가요?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알아보다 보니까, 2주마다 나오는 페이첵이 참 그립더라고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빨리 가게를 인수해야겠다는 압박도 심했고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인수할 가게만 아니라 대출을 완벽하게 준비한다면 좀 더 안정적으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일즈맨과 가게 오너의 명과 암

앞서 소개한 두 분은 세일즈맨 시절에도 워낙 열심히 하고 평판도 아주 좋은 영업사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분들의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모두 술술 풀리진 않는 법. 서부 지역에서 세일즈를 하다 친해진 사장님과 동업하게 된 분의 경우는 후회하는 부분도 많다고 한다.

“장사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죠. 그리고 동업을 왜 말리는지 알겠더라고요. 제 지분이 있는 가게지만 100% 사장이 아니다 보니 마음대로 오더를 하거나, 원하는 대로 가게를 운영하지 못하는 점이 많았어요. 가장 큰 문제는 동업자와 나눠야 하니까 수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예요. 장사가 잘될 때는 직장 다닐 때보다 많이 벌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W-2 생활이 그립죠.”

출장 부담이 없으니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주말마다 일해야 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면 9시~10시니 저녁 먹고 잠자기 바빠요. 그래서 가끔은 아직 젊은데 괜히 장사를 시작해서 여기에 발이 묶여 버렸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요.”

동부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다는 한 사장님도 마찬가지였다.

“뷰티 업계 세일즈맨으로 15년 넘게 일하면서 이 지역 담당자로 자주 출장을 왔었어요. 이 가게를 잘 알고 사장님과도 친해서 좋은 가격으로 인수하긴 했는데,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가족이 타 주에 있어서 좀 외로워요. 게다가 두 집 살림을 하니 생각보다 돈이 모이질 않네요. 가끔은 내가 왜 장사를 시작했을까 후회가 되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세일즈 할 때는 미처 몰랐는데 직접 뛰어들어보니 비로소 알게 된 것들도 많단다. “세일즈맨 때는 여유롭게 장사하시는 분들 보면 참 부러웠거든요. 돈도 잘 버시고, 출퇴근도 마음대로 하고, 한국도 몇 개월씩 갔다 오시고 그런 점만 눈에 들어왔는데요. 그분들도 초기엔 엄청 고생하셨을 거란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장사를 계획하는 세일즈맨이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만 아니라 워라밸 같은 것도 보시고, 한 번 장사를 시작하면 그만두기 쉽지 않으니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폭넓게 고려했으면 합니다. 아는 분 중에서는 장사를 하시다가 하루에 열 몇 시간씩 가게에 박혀 있는 걸 못 견뎌서 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50이 넘어서 다시 세일즈맨을 하는 분도 있어요. 그런 경우를 피하려면 정말 심사숙고해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번에 만나본 뷰티서플라이 오너분들의 공통점은 세일즈를 바탕으로 뛰어든 만큼 남다른 열의를 갖고 일한다는 점이다. 장사를 한 것을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하신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었다. 장사를 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니 장사를 계획하는 분이라면 철저한 시장조사와 자료조사, 대출 확인, 가족과 충분한 상의 등 여러 가지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했음에도 장사가 힘든 분이 있다면 미생의 또 다른 명언으로 응원하는 바이다. “버텨라,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

 

 

PEOPLE By JAMES CHUNG
BNB 매거진 2024년 10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