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아픔을 딛고 Top 세일즈맨으로!
Annie International 세일즈맨 양진원 차장(45세) 인터뷰
뷰티업계 잡화 부문의 대표적인 회사 Annie의 영업사원 양진원차장을 만났다. 그는 5년 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세일즈 현장에서 고객들을 만나며 이혼의 상처가 아물고 극복되었다고 한다. 직관과 순발력이 돋보이고 박학다식한 그는 최근 회사에서 베스트 세일즈상도 받았다. 인터뷰에서 아픈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지나간 과거는 모두 훌훌 털어내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또 하나의 삶의 이정표가 되었기를 바래 본다.
유학생에서 영업사원으로
어떻게 Annie에서 일하게 되었나?
대학 졸업 후 2001년 1월 대학원 석사과정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유학 생활 중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졸업 후 피츠버그에 있는 철강회사에서 2년 동안 일하다가, 선배님들의 권유로 2007년에 Annie International에 입사했습니다. 그 후 쭉 13년을 이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입사한 후 처음에는 영업관리 & 마케팅팀에서 피터박(Peter Park)전무님과 함께 일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조지아 지점에서 창고와 물류 담당으로 일하다가, 2018년부터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플로리다 지역을 맡아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원래 영업하기 싫어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도 영업사원 이미지가 좋지 않잖아요. 영업은 학력도 크게 필요가 없어요. 고졸 이상만 되어도 영업사원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10년도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된 보고서가 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에 의하면, 인공지능AI의 발달에 따라 많은 직업군이 사라지게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고 더욱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직업군은 축적된 데이터의 알고리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분야라고 하더군요. 예를 들면, 정신치료사,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 등이 해당되는데, 모두 인간의 감성을 터치하는 직업입니다. 그런 직업군으로 언급된 것 중 다섯 번째가 바로 영업사원이더라구요. 영업은 직감과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데요. 저도 직관과 순발력 면에서는 남보다 뒤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영업현장에서 필요한 직관과 순발력을 기르기 위해 영업 관련 정보를 많이 축적할 것 같다?
뷰티서플라이 업계의 최신 흐름을 파악하는데 BNB Magazine을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뉴스도 열심히 보고 책도 많이 읽으며 지식을 쌓습니다. 회사에 제출하는 데일리 리포트를 쓰는 것 외에 그날그날 중요한 정보는 따로 노트에 기록합니다. 생일이라던지, 좋아하는 것이라든지 등 손님의 취향 같은거요. 예를들면, 손님이 요구르트를 좋아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았다면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방문할 때 사갑니다. 영업사원은 항상 관찰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강한 자에게는 더 강하게
직장에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저희 회사에 강이사님이란 분이 계신데 Annie의 세일즈계에서 전설 같으신 분이세요. 제가 입사했을 때 그분은 흔히 말하는 신입사원 킬러로 알려져 있으신 분이셨어요. 그분은 신입이 들어오면 초장에 박살내는 스타일인데, ‘만약 초장에 박살 나버리면 앞으로 회사생활이 힘들어지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새파란 신입인 제가 그분을 부를 때 꼬박꼬박 “지오씨 지오씨”라고 했어요. 당시에 세일즈맨은 부장님 한 명 빼고 나머지 분들은 직위가 없었거든요.
그랬더니 어느 날 그 분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이거 너무 한 거 아냐? 나이차이도 10살 이상 나는데 꼬박꼬박 지오씨, 지오씨라고 부르는건 뭐냐?”
“직위가 없으시잖아요?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선배님도 있고 형도 있는데…”
“그럼 제가 친해지면 형님이라고 부를께요.” 그랬더니 열 받아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라구요.
“소리지르지 마세요. 여기는 한국이 아니고 미국입니다. 나이는 상관이 없어요.”
“내가 당장 본사에 올라가서 내가 너를 자르던지 나를 자르던지 사장님께 이야기할 테니 두고 보라.”
그리고 여기저기 회사 선배님들한테 전화해서는,
“무슨 신입사원 교육을 저렇게 시켰나.”며 난리치는 거예요. 그랬는데 결국 그분이 본사에 못 올라오셨어요. 충격을 받으셨는지 탈장이 돼서 수술을 받으셨거든요.
그후 그렇게 6개월을 싸우다가, 결국 나중에 제가 형님이라고 부르며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어요.
“그때 형님께 싸가지없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근데 왜 그랬냐?”
“왠지 형님께는 얕보이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약한 자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한 자에게 약하게 굴면 봐주는게 아니라 먹잇감 밖에 안되는 게 세상의 이치거든요.
입사 3개월 밖에 안된 새파란 신입이 막말로 들이받은 건데…이 이야기가 잡지에 나가면 강이사님이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괜찮아요. 지금은 형님동생으로 누구보다도 친한데요 뭐. 인터뷰 하기전에도 전화했어요.
“형님 저 BNB에 인터뷰하러 가요.”
“어 그래? 잘하고 와.”
본인 성격은 어떤가?
사실 좀 내성적이에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말도 유창하게 잘하고 보기에는 그렇게 안느껴지는데…?
저는 고독을 즐기는 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아까 말한 우리회사 유명하신 그 강이사님이 하신 말씀인데 “세일즈맨은 여러 개의 가면을 들고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갑질을 하는 가게에서는 굽신거려야 하고, 또 다른 가게에서는 오히려 큰 소리도 쳐야 할 때도 있는 거죠. 본인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향 50%와 살면서 축적한 나머지 50%를 버무린 거죠.
이혼의 아픔을 딛고
인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경험은 뭔가?
음…솔직히 제가 이혼을 했거든요. 5년전 이혼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자 저를 많이 성숙하게 만든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는 정말 평탄한 삶을 살아왔거든요. 성장과정, 가정환경, 공부, 직업, 결혼 등 모든 게 순탄했던 인생이었어요. 이혼 후 처음으로 제가 이단아가 된 듯하고 정해진 코스에서 이탈된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이혼 과정에서 다시한번 관계 회복을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애 엄마가 “아닌 것은 아닌 거다!”라며 확실하게 선을 긋더군요. 그 때 ‘아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되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한번은 더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모든 것은 ‘due date’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후 깨달은 건 한마디로 ‘있을 때 잘하자. 그리고 이미 지나간 것은 후회는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을 후회하나요?
‘나는 후회하지 않았고, 후회 했었다는 생각까지도 지우자’라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되었어요.
이혼을 후회했고 그 아픔이 아직 극복이 안된 것 같다?
제 인생의 가장 큰 상처입니다. 그래도 상처는 아물어가는 거니까요. 흉터는 남겠지만. 그런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의 아픔도 공감할 수 있게 된 거죠. 그 일로 많이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외로운 분들은 영업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며 힐링하는 경우도 많던데…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고나서 영업이 더 잘되는게 아닌가?
사실 맞아요. 만약 이혼을 안 했으면 영업도 안 했을 것 같아요. 전화위복이 된 거죠. 근데 사실 영업하면서 이혼 얘기는 거의 안 해요. 제가 이혼했다고 이야기를 꺼낸 손님은 딱 세분입니다. 먼저 두 분은 여성 한 분과 남성 한 분인데요. 같은 상처를 갖고 있어서 마음이 잘 통했어요. 동병상련을 느낀 거죠. 또 다른 한 분은 그 댁에서 하루 밤 신세 졌을 때, 서로 간 흉금을 털어 놓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정말 위로가 되더라구요.
사주팔자를 봤더니…
우연의 일치인지…이혼 후 영업이 잘된 것 같다?
교회 다니시는 부모님이 아시면 혼날 이야기인데요. 이혼하고 힘들어서 사주팔자를 보러 갔어요. 아틀란타에서 사주팔자를 봐주시는 그 분은 대학에서 명리학을 배우신 분이셨어요. 그분이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2018년부터는 잘 풀릴 거다. 걱정하지 말아라. 새 사람도 만나고 회사에서도 잘 될 거다.”
그 말을 듣고 힘이 생기더라구요. 그 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했어요. 제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제가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사주팔자 보는 것은 일종의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더라구요. 사람이 편하면 절대 그런 곳에 안찾아가잖아요. 40대가 거기 찾아가면 뭐겠어요. 대부분 돈과 여자문제 아니겠어요? 사실 뻔한 건데 거기 갔다 왔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사주팔자를 보고 인생을 조금 더 낙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나 보다?
그건 아니에요. 저는 원래 낙관적이었어요. 근데 이혼 과정에서 솔직히 우울증을 겪었어요. 술도 많이 마시고, 취하면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인간이 힘들면 신을 찾잖아요.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무신론자에 가까워요. 그래도 저는 신은 필요하다고 생각돼요. 우리는 약한 존재니까요. 저는 힘들 때 교회를 갔던 것 같아요. 군대 있을 때 갔구요. 미국 처음 왔을 때도 갔어요.
근데 사람이 편해지니까 교회에 안가게 되더라고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잖아요. 힘들고 어려울 때는 기댈 곳이 필요한데 그게 종교예요. 꼭 유일신일 필요는 없어요. 보수적인 교회에서 들으면 쫓겨날 얘기자만요.
Annie라는 회사는…
회사 허락을 받고 인터뷰 왔을 텐데, Annie 자랑을 좀 한다면?
Annie는 93년에 설립되었어요. 벌써 창사 37년이 된 탄탄한 회사죠. 뷰티업계에서 잡화 분야의 대표적인 회사예요. Annie는 크게 세가지 장점이 있는데요. 첫째는 직원 입장에서 보면 회사가 안정적입니다. 회사가 직원에게 대우를 잘해 주기 때문에 저희 회사 세일즈맨들은 20년 되신 분들도 다니고 계세요. 장기근속자가 많습니다. 두번째는 뷰티의 A to Z라고 할 만큼 제품이 정말 다양해요. 롤러, 브러시, 고무밴드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전기제품과 잡화, 코스메틱 제품까지 나와요. 그래서 저희 회사는 원스톱 쇼핑이 가능해요. 한마디로 제품의 다양성이 큰 장점이죠. 세번째 장점은 서비스의 지속성이에요. 저희는 1달에 1번 이상씩 꾸준히 손님을 방문해요. 방문해서 신제품을 소개하거나 스톡 리필을 계속해 드립니다. 손님은 앉아서 다양한 물건을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받을 수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은?
열심히 일해서 조지아 지사를 필라델피아 본사만큼 키우고 싶어요. 나중에 조지아 지사장도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Story 세일즈맨의 비전 BY SAMUEL BEOM
BNB 매거진 2020년 4월호 ©bnb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