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엑소더스’ 흑인 커뮤니티의 대이동

‘블랙 엑소더스’

흑인 커뮤니티의 대이동

 

 

미국 내 흑인 커뮤니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블랙 엑소더스(Black Exodus)’로 불리는 이 움직임은 흑인 가정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대도시를 떠나 인근 도시나 타 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흑인 커뮤니티의 이동은 단순한 인구 통계의 변화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구조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또한 흑인이 주고객을 차지하는 뷰티서플라이 산업에도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블랙 엑소더스가 흑인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과 인구 변화에 따른 뷰티서플라이 전략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Part 1. 선 벨트를 향한 ‘새로운 대이주(New Great Migration)’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대도시들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흑인 커뮤니티는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에는 인플레이션, 산업 구조의 변화, 주거비 부담, 인종 차별 등의 문제로 많은 흑인들이 북부와 서부에서 더 나은 조건을 갖춘 선 벨트(Sun belt)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선 벨트는 텍사스와 테네시, 앨라배마,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이어지는 미국 남동부의 신흥 산업지대를 일컫는 말이다. 풍부한 일조량으로 전기요금이 낮고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와 유연한 고용환경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미국 흑인들의 역사적 대이동은 한 세기를 넘어 두 번의 큰 변곡점을 맞이했다. 1910년부터 1970년에 진행된 ‘초기 대이주(Great Migration)’에서는 많은 흑인이 남부의 열악한 경제 상황과 인종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 북부와 서부로 향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대이주(New Great Migration)’는 초기 대이주를 역전했다. 흑인들이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찾아 다시 남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현상은 특히 남부의 낮은 생활비용과 따뜻한 기후로 인해 2010년부터 더욱 가속화되었다. 팬데믹 이후에도 이 같은 이동은 경제적 동기와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많은 흑인 가정들에 의해 새로운 맥락에서 계속되고 있다.

 

 

흑인들의 오랜 보금자리, 그들을 떠나게 하는 것들

  1. 비싼 물가와 주거비용

팬데믹이 남긴 인플레이션은 미국 가정에 무거운 짐을 지웠다. 특히 흑인 인구가 많은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대도시는 생활비와 주거비용이 급격하게 올라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경제적 압박은 생활필수품에 대한 지출 비율이 높은 흑인 가정에 더욱 가혹하게 다가왔으며 주거비용과 함께 삶의 큰 부담으로 자리 잡았다.

1968년 공정 주택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흑인 커뮤니티는 불공정한 대출 조건과 높은 이자율에 시달려야 했고 많은 흑인 가정이 구입한 주택들이 압류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이유로 흑인 주택 소유율은 낮아지고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많은 흑인 가정들이 거주지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1. 산업의 변화와 세금 부담

산업의 흐름이 변하면서 한때 번성했던 기존의 산업 도시들이 쇠퇴기를 맞았다. 제조업과 철도 업계에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특히 중서부 지역의 흑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인디애나주 개리(Gary)를 예로 들 수 있는데, 한때 미국 최대의 철강 공장을 자랑하며 남부에서 이주해온 수많은 흑인이 정착했으나 산업의 쇠퇴와 함께 그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었다.

더불어 과거에 북부와 서부로 이동했던 흑인노동자들이 은퇴 시기를 맞아 보다 나은 생활 조건을 찾아 따뜻한 지역이나 세금 부담이 덜한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들이 이동하는 주는 대체로 주소득세가 없거나 평균적으로 낮은(3.8% 대비 8.0%) 지역이다.

 

초기 대이주 당시(Great Migration) 제철소, 공장, 조선소 등의 일자리를 제공했던 중서부 지역의 흑인 인구 감소세  출처: U.S. Census Bureau created with Datawrapper

 

사람들도 세금 부담으로 이주를 결심하지만,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팬데믹은 대도시의 근무 환경을 재편하며 많은 기업이 비용 절감과 세금 혜택을 찾아 선 벨트 지역으로 이동을 서두르게 했다. 이 지역에 대한 투자와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신규 일자리 창출 뿐만 아니라 소매점, 식당 운영과 같은 지역 사업체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022년에 일자리가 가장 많이 증가한 대도시 상위 지역은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선 벨트 지역에 위치해 있다.

 

  1. 마음의 고향: 가족과 커뮤니티의 든든한 지원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남부를 뿌리로 삼은 많은 흑인들이 가족과 커뮤니티와의 깊은 유대감을 중심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문화와 유산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돌아가길 열망하고 있다. 이러한 갈망은 세월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해지며, 현재는 이주의 큰 원동력이 되어, 문화적 및 정서적 연결고리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출처: ‘The Village Retail’
애틀랜타에 위치한 ‘Ponce City Market’ 내 ‘The Village Retail’은 이러한 커뮤니티 활동의 생생한 사례이다. 여성 흑인 교육가이자 사업가인 레이케샤 할몬(Lakeysha Hallmon)이 설립한 이곳은 현지 흑인 사업가들에게 판매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발전, 커뮤니티 유대감 강화, 조상의 문화와 유산 전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처: HBO MAX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찰스 블로(Charles Blow)는 흑인들이 남부로 대거 이주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기 위해 뉴욕에서 조지아주로 이사를 결정하고, HBO 다큐멘터리 “South to Black Power”를 통해 그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있다.

 

  1. 환경적 차별

흑인 커뮤니티가 번성했던 지역들은 과거 산업 번영을 누렸지만, 이제는 환경 오염과 같은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뉴욕 브롱스의 ‘천식 골목’*, 캘리포니아의 석유가스 생산 시설, 미시간주 플린트의 오염된 수도시설은 이러한 환경적 문제가 흑인 주거 지역에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문제들은 종종 과거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리 기관의 결정, 기업들의 토지 사용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은 흑인 커뮤니티가 오염된 환경에 머무르게 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환경적 차별은 흑인들의 건강과 삶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더 나은 환경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결심을 하도록 했다.

*미국에서 빈민 지역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사우스 브롱스의 경우, 공해가 심하고 호흡기 환자가 많아 ‘천식 골목’으로 불린다. 브롱스 주민들이 천식으로 입원할 가능성은 전국 평균의 5배나 높다. 

 

  1. 의료시설 접근의 어려움과 범죄율 증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이미 고급화된 대도시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총기 부상률이 62%나 높아지며 흑인 사회에 큰 위협을 가했다. 특히 시카고에서는 흑인 인구 급감 지역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희생자가 전체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폭력의 확산은 노동 시장의 악화와 더불어 오랜 기간 차별에 의해 축적된 흑인 사회의 좌절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또한, 팬데믹 기간 동안 흑인 사망자 수에서도  불균형이 드러났다. 필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낮아 흑인 사망률의 불균형은 더욱 심해졌고 이는 흑인 커뮤니티가 오랫동안 안식처로 여겼던 공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Part 2. 새로운 ‘블랙 메카’로 지목되는 도시들

비즈니스는 인구의 흐름과 새로운 패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흑인 커뮤니티와 깊은 연결고리를 지닌 뷰티서플라이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흑인 커뮤니티가 선택한 이주 경로들은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고 이들이 발을 딛은 도시들은 주거, 일자리, 교육, 정치적 대표성 등 생활의 핵심 분야에서 변혁을 가져왔다.

흑인 커뮤니티의 이동은 단지 인구 수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나이, 성별, 결혼 상태, 교육 수준 등 다양한 요소들을 바꿔 놓는다. 인구 동향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에 맞춘 전략을 짜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이자 기회라 할 수 있다.

 

 

 

흑인 인구가 성장하는 지역들

조지아 애틀랜타 : 다이나믹한 흑인 문화의 심장, 흑인의 성공을 위한 기회의 도시

애틀랜타는 흑인 소유 비즈니스의 비중이 미국내에서 가장 높고 흑인 고유 문화가 풍부한 도시로 유명하다. 음악과 영화, TV 등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주어 ‘블랙 메카’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애틀랜타는 젊은 흑인들이 이사 오고 싶은 도시 1위를 차지했다. 조지아주는 전기 자동차 산업의 핵심 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평균 연령 36세로 활발한 노동 시장을 기대할 수 있는 지역이다.

텍사스 댈러스, 오스틴, 휴스턴 : 젊음이 넘치고 주 소득세가 없는 미래지향적 도시

이 도시들은 인종 다양성을 포용하는 곳으로 특히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다. 주 소득세가 없어 매력적인 곳으로, 창업자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2015년부터 캘리포니아 출신 흑인들에게 선호되는 목적지가 되었으며 2023년 현재까지도 그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랄리, 샬럿 : 저렴한 생활비와 급성장하는 흑인 커뮤니티

랄리는 팬데믹 기간 동안 흑인 주택소유율이 상승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샬럿은 전체 흑인 인구가 33%로 빠르게 성장하는 흑인 커뮤니티로 꼽힌다. 제조업과 금융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가 있어 샬럿 주민들은 이 도시가 애틀랜타를 넘어 미국의 새로운 ‘블랙 메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플로리다 올랜도, 탬파, 잭슨빌: 따뜻한 햇살과 세금 혜택을 즐기는 이주의 핫스팟

주 소득세가 없고 따뜻한 날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매력적인 목적지가 되었다. 경제적 여유와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인구 유입률이 증가했으며 2023년 일자리 성장률에서 8위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흑인 이주민은 뉴욕 출신이다.

서부 네바다와 애리조나 : 캘리포니아 흑인 커뮤니티의 새 선택지

남부에 집중된 흑인 이주와 달리 이 지역들은 서부에서 가장 많은 흑인 이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온 이민자에 의해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애리조나는 Intel과 TSMC 같은 반도체 대기업 회사의 대규모 투자로 인해 경제적 성장과 지역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미국 내 뷰티 서플라이 매장의 분포와 인구 만 명당 매장 수를 분석해보면, 인구 대비 많은 뷰티서플라이 매장을 가진 지역들이 흔히 ‘블랙 메카’로 불리는 주들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인구 변화로 달라진 소매점의 전략

앞서 언급한 선 벨트 지역에서는 흑인인구 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인구가 상승했다. 상업용 부동산의 재고부족으로 작은 규모의 매장 개설이나 할인 매장의 인기를 활용한 임대 전략 등이 주목받고 있다. 할인 매장과 대형 소매업체 사이에서도 전략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Dollar General과 Five Below 같은 할인 매장들은 올해에 선 벨트 지역에 집중적으로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IKEA, Macy’s 과 같이 대형매장을 고수했던 기업들은 소규모 컨셉의 매장을 오픈함으로써 변화하는 시장에 발맞추고 있다.

 

출처: CoStar, 2024
선 벨트 지역 주요 도시의 현재 상업용 부동산의 재고가 지난 10년 평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IKEA
IKEA는 넓은 쇼룸으로 유명하지만, 올해 애틀랜타에 소규모 컨셉의 매장을 오픈하여 변화를 주었다. 작년 선 벨트 지역에서는 스몰 비즈니스 임차인들이 주요 역할을 하며, 5000sq.ft 미만의 소매점 임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팬데믹 동안 인구도 변했지만 같은 지역에서의 소득격차가 심해지기도 했다. 월마트와 같은 대형 소매업체는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여 저소득층과 맞벌이 가정을 위한 저렴한 온라인 쇼핑 및 픽업 서비스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고소득층 고객을 위해서는 프리미엄 브랜드 인수와 고급 브랜드와의 협력 등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편 높아진 집값과 이자율로 미국 내 다세대 가구 생활이 증가하면서 밀레니얼 세대 중 약 40%가 부모나 다른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살고 있는 추세다.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의 밀레니얼 세대보다 경제적 여유가 많아, 함께 사는 조부모가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조부모 경제(Grandparent Economy)”가 새로운 소비패턴으로 지목되며 ‘시니어 마케팅’ 전략을 이끌기도 한다. 특히 흑인가정은 타 인종에 비해 조부모와 손자, 손녀가 함께 사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인구 변화에 따른 뷰티서플라이 대응 전략 가이드

흑인 인구 증가 지역
  1. 가격 경쟁력 확보하기: 달러스토어와 같은 할인점이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다. 할인점에 없는 보완적인 제품 판매나 경쟁력 있는 가격 정책으로 시장에서 차별성을 주어야 한다.
  1. 지역 커뮤니티와의 교류: 지역 사회 행사 참여와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활발한 소통으로 새로운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고,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한다.
  1. 신규 매장 개설의 기회: 상업용 부동산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지만 강력한 수요도 뒷받침되기에 뷰티서플라이 매장이 새로운 지역에 진출하거나 기존 매장을 확장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1. 새로운 고객층 수요파악과 마케팅 전략 세우기: 배경이 다양한 새로운 고객들을 위해 다양성을 반영한 제품라인을 준비하여 차별화된 쇼핑 경험을 만든다.
흑인 인구 감소 지역
  1. 고객 서비스 집중: 인구 증가율이 낮은 지역에서는 기존 고객을 유지하려면 매장의 확장보다는 기존 고객 서비스에 포커스를 해야 한다.
  1. 틈새시장: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틈새수요와 고급 제품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다. 우리 가게만의 고유한 제품이나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고객층을 타겟으로 한 매출 증대 전략을 세운다.
  1. 개별 맞춤형 판매 전략 강화: 한정된 고객 기반일 경우, 소매점의 강점인 개인화된 서비스를 강조하여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1. 손님당 거래 비용 늘리기: 인구가 줄고 있는 건 손님 한 명 당 더 많은 제품을 판매를 해야함을 말한다. 고객별로 더 많은 제품 판매를 목표로 설정하고, 필요한 제품과 함께 추가 상품을 추천하여 매출을 올린다.

 

이러한 인구이동 트렌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흑인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도 부족한 인프라나 급속한 도시화로 부작용을 겪을 수 있고, 현재 인구 감소가 심한 대도시 지역은 새로운 형태의 모습으로 다시 이주 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 변화는 언제나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가져오므로, 이를 잘 활용하여 비즈니스에 적용하면 성공적인 매장 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COVER STORY By BNB MAGAZINE
BNB 매거진 2024년 5월호 ©bnbmag.com